물가 안정 압박에…식품·외식업계 다시 ‘슈링크플레이션’?

지난해 슈링크플레이션 제품 91%가 식품
정부 눈치에 용량·원산지 변경 ‘꼼수’ 늘어
“소비자 기만 우려…변경된 내용 알려야”


서울 한 대형마트 라면 판매대 [연합]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최근 정부가 먹거리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식품·외식 업계의 ‘꼼수 가격 인상’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눈치에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이거나 원산지를 변경해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1~4분기 백화점·대형마트·온라인몰 등 주요 유통업체에서 판매된 상품 중 용량이 감소해 단위가격이 인상된 제품은 총 57개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식품은 52개로 91.2%를 차지했다.

이상기후에 따른 원재료비 상승과 인건·유류비 상승, 고환율 등이 겹쳐 생산비용이 증가하자 제품 용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인상하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늘어난 것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업계는 새 정부가 식품 물가를 잡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만큼 꼼수 인상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슈링크플레이션 외에도 주요 성분의 함량을 줄이거나 값싼 원재료로 대체하는 ‘스킴플레이션(Skimp+Inflation)’ 방식도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힌 만큼 생산비용이 늘었다고 가격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제조사는 용량이나 원재료를 변경하는 방식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소비자 반응도 민감해졌다. 최근 단종에 이어 신제품을 출시한 교촌치킨도 타깃이 됐다. 교촌치킨은 국내산 닭을 사용하던 ‘교촌윙’, ‘레드윙’ 등 ‘윙 시리즈’를 단종하고, 태국산 닭을 사용하는 ‘윙박스 시리즈’를 출시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꼼수”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서울 강남구 한 치킨집에 국내산 닭으로 만든 옛날통닭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


윙박스는 기존 윙 시리즈와 가격은 유사하다. 간장·레드·허니·후라이드 윙박스는 2만2000원, 양념치킨 윙박스는 2만3000원이다. 교촌윙과 레드윙도 2만2000~2만3000원이었다. 중량은 일부 차이가 있다. 윙 시리즈가 중량을 920g가량으로 고정한 반면, 윙박스는 개수를 16조각으로 정해놓는 방식이다.

교촌치킨 관계자는 “기존 윙 시리즈는 부분육 수급에 문제가 있어 단종하고, 대신 품질을 개선한 신제품을 낸 것”이라며 “싼 재료를 쓴 게 아니라 국내산과 품질에서 별 차이가 없는 태국산 닭을 사용했다. 오히려 이익률은 태국산이 국내산보다 약 10%포인트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식부(뼈를 제거하고 먹을 수 있는 부분) 중량도 커졌다”며 “윙박스의 조리 전 조각당 원육 크기는 윙 시리즈보다 1.2~1.3배 크고, 가식 부위도 조각당 약 5~10g 많다”고 부연했다.

소비자단체는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부터는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품목들을 제조하는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 등을 축소하는 경우 ‘부당한 소비자 거래행위 지정 고시’에 따라 500만~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있다.

곽도성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제품을 샀는데 기존보다 양이 줄었다면 기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양을 줄이거나 원재료를 바꾸더라도 해당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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