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국”…고려인 정신, 광주 월곡서 움트다

고려인마을, 공공미술로 재탄생
배일섭 대표 등 작가 3인 주도
아픔 속 희망 담은 예술 프로젝트

벽화·조형물로 역사와 정체성 표현
주민 반응, 경계에서 호감으로 변화
관광객 늘며 마을에 활기 더해져


고려인마을 공원 벽에 새겨진 그림 [자료=고려인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의 삶은 편안했을까.”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이 같은 물음에서 시작했다. 이 곳은 2000년대 초 고려인들이 하나, 둘 정착하며 고려인마을이 됐다. 현재는 고려인 7000명에 타지에서 합류한 여러 국적의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1만5000명이 모여 산다.

고려인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무국적 동포들을 말한다. 1860년대부터 기근을 피해 연해주로 이동한 조선인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항일운동을 하던 이들이 두만강을 넘어 정착하면서 본격화됐다.

고려인들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로 재이주했다. 서로 일자리와 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 광주 광산구로 모여 터를 잡았다. 이들의 삶을 담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년 전이다. 낡은 건물의 벽 혹은 전봇대 등에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냈다. 지난 14일 고려인마을을 찾아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배일섭 공공미술공동체 대표를 만났다. 배 대표는 프로젝트 내내 고려인의 삶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졌다고 했다.

강제로 쫓겨난 삶, 힘겨웠던 귀향,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현실. 배 대표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은 고려인의 고된 삶을 곱씹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슬픈 부분만 조명해 마을을 채울 순 없었다. 그는 “삶이 힘들어도 고려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리운 대상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광주 고려인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전개한 배일섭 공공미술공동체 대표


▶‘희망’ 담아 고려인 서사 그려냈다…선명하고 화려해진 마을=배 대표는 고려인들의 서사에 희망을 덧입혀 마을 전체를 구상했다. 그는 “공공미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작용을 다 꺼내는 것”이라며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나 타의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일컫는 말)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여러가지 복잡하고 교차된 감정이 몰려온다고 했다.

배 대표는 “특히 척박한 곳에서도 살아남는 풀뿌리 정신을 담으려고 했다”며 “완전히 내국인으로서 정착하지 못하는 딜레마,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현실을 극복해야한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은 다른 공공미술 프로젝트 지역보다 화려하고, 선명하다. 건물의 색채와 문양은 중앙아시아 성전이나 왕국의 양식에서 주로 도출했다고 한다. 무채색 시멘트가 많았던 공원들을 시작으로 길거리로 작업 동선을 잡았다. 이들이 진행한 작품설치 및 시설물 조성만 해도 60개가 넘는데 벽화, 조형물, 벤치, 장식품 등으로 다양하다.

고려인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중앙공원. 이 곳 타이포 조형물에는 중앙아시아 각국의 옷을 입은 인물들과 타일모자이크가 함께 배치됐다. 글자도 크고, 색도 화려하다.

마을 곳곳에는 ‘이어짐’의 의미도 부여한 조형물이 많았다. 공원 내 모자이크타일 양식의 벤치는 두 개의 세계가 이어지는 뜻을 담아 선형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벽이나 타일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새를 표현한 그림이 유독 많았다. 자유를 갈망해 온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전봇대에는 천국의 여신 ‘실라’ 뿐 아니라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 등이 다양하게 새겨졌다.

전설을 담은 벽화도 있었다. 한 건물 벽에 있는 ‘생명의 이식쿨’ 그림은 호수 근처에 있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목가적인 모습을 담았는데, 키르기스스탄의 고대왕국 전설로는 공주가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자 대성통곡을 해 왕국이 가라앉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배 대표는 “어디서부터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예술은 보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했다. 고려인마을의 모습도 우리가 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게 배 대표의 말이다.

김원 작가


▶“눈 흘기던 일부, 어느새 음료수 건네더라”…지루하지 않은 마을로 재탄생=고려인마을의 프로젝트 타이틀은 ‘달+달-월÷곡’이다. 배 대표는 “보통 후미진 동네에 달월(月)자를 쓰지 않느냐”며 “고려인들이 가진 ‘달달한 마음’에 더할 부분은 더하고 나눌 건 나누자는 뜻을 담은 수식”이라고 했다.

배 대표가 총괄 그림을 그렸다면, 강웅 작가는 이를 아이디어로 구현했다. 김원 작가는 설치로 이를 구체화해 표현했다. 세 사람은 2008년 세종시 첫마을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해 이번이 세번째다. 직전엔 2020년 화순군에서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에서 만났다.

취지는 좋았지만, 초반엔 어려움을 겪었다. 공공미술 특성상 예산이 한정됐다는 문제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도 따가웠다.

강웅 작가


강웅 작가는 “제일 처음에 일 시작할 때 ‘먹튀하지 말아라’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과거 마을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있었는데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이렇다할 결과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강 작가는 “나중에는 당사자분께서 ‘미안했다’고 사과해주시고, 주민들이 오다가다 응원의 메시지도 주고받고 음료수도 주더라”라며 웃었다. 예술에는 얼어붙은 마음을 일순간에 녹이는 힘이 있다.

지금은 모두 호의적이다. 고려인 마을의 신조야 대표는 “마을에 공공미술이 접목된 후 우리(고려인마을)를 향한 주변의 태도도 더욱 우호적으로 됐다”며 “교류도 더 많아졌다”고 했다. 안으로만 모였던 마을의 에너지가 외부로 분출되기 시작됐다는 얘기다.

김원 작가는 “계단 작업을 하는데, 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려인 화가 문빅토르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작업 도중 난간을 설치했던 게 기억이 난다”며 “완성된 것을 보고 선생님이 날려주신 ‘따봉’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건물주들과의 소소한 갈등 등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초반에는 낙후된 건물이나 후미진 공간을 중점적으로 페인팅했지만 과감한 색채나 그림도 시도하기 시작했다. 한 건물은 새빨간 색으로 덮었는데, 건물주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 초록색으로 바꿨다고 했다. “색이 잘 먹는 빨간색이라서 엄청나게 고생했다”라고 세 사람은 세 사람은 토로했다.

고려인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한 3인의 작가들은 “고려인마을처럼 예술가들, 마을사람들, 행정적 지원 등 ‘3박자’가 고르게 맞아떨어진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김 작가도 “지자체와의 호흡이 이정도로 잘맞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하모니’를 방증하듯 이 마을에는 두드러지는 상징물이 없다. 처음에 ‘연어 한마리가 파도를 헤치고 오는 상징’을 만들려고 했으나, 이것도 접었다.

강 작가는 “특정한 것을 튀게 하는 대신에 최대한 많은 색을 쓰고 조형물이나 타일, 벽화 등 여러 방식으로 작품을 구현했다”며 “이색적인 것들로 채워,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라고 전했다.

고려인마을에 예술이 입혀지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꽤 늘었다. 주말에는 일반 관광객들뿐 아니라 유튜브나 사진 촬영을 위해 오는 인플루언서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인마을의 변신이 시작된 지 이제 1년이다. 일부는 낡아질 것이고, 일부는 반짝일 것이다. 배 대표는 “마을은 성장하고, 일부는 훼손되고, 또 복구되면서 자란다”며 “장기적으로 이를 지켜봐 줄 시선이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서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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