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0’에 세계랭킹 1위도 흔들…‘압도적 코다’ 실종에 LPGA도 전전긍긍

여자골프 1위 넬리 코르다 올해 무승
지난 시즌 7승으로 LPGA 투어 지배
신예들 맹활약 속 올해 다승자 없어
코르다 “할머니 된 기분…그게 골프”
코르다 부진에 투어 인기 식을 조짐

 

지난 시즌 LPGA 투어에서 7승을 휩쓸며 투어 인기를 끌어 올린 넬리 코다가 투어 일정의 절반 이상을 소화한 올시즌 아직 우승을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가끔은 제가 할머니가 된 기분이예요.”

올해 스물여섯인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미국)는 최근 끝난 시즌 네번째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신예들의 선전에 압박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시즌 초 연습장에 가보면 절반은 처음 보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가끔 내가 할머니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웃었다.

전세계에서 젊고 실력있는 골프 선수들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밀려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시즌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새얼굴들은 출중한 실력 못지 않게 멘털도 뛰어나다. 투어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최종일 압박 속에서 기어코 우승을 낚아챈다. 투어 톱랭커들도 혀를 내두를만 하다.

22세 지노 티띠꾼(태국)조차 “여기에서 우승하는 건 솔직히 정말 어렵다. 재능있는 신예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우승을 위해선 실력도 필요하고, 운과 타이밍도 따라줘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올시즌 LPGA 투어에서 다승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주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18개 대회(2인 1조 다우 챔피언십 포함)가 열렸고 모두 19명의 챔피언이 탄생했다. LPGA 투어 7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991년과 2017년엔 시즌 개막 후 15개 대회까지 서로 다른 챔피언이 나온 게 이전 최다 기록이었다.

18개 대회 우승자들도 8개국에 걸쳐 있다. 한국이 4승, 미국·스웨덴·일본이 각각 3승을 거뒀다. 호주는 이민지와 그레이스 김이 메이저 2연승을 따냈다. 데뷔 첫 우승자는 6명이나 된다. 올해 챔피언 가운데 통산 5승 이상을 기록했던 우승자는 단 3명(리디아 고·김효주·이민지) 뿐이다.

2025 시즌 LPGA 투어 우승자
2025 시즌 LPGA 투어 우승자 ※는 메이저 대회

다양한 챔피언의 탄생은, 필드를 지배하는 절대강자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언론과 LPGA 투어는 특히 넬리 코다의 침묵에 집중한다. 지난 시즌 7승의 압도적 기량을 선보이며 투어 인기를 끌어 올린 코다는 올시즌 무승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맘때 코다는 이미 5개 대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6승을 휩쓸었다. 그야말로 ‘코다 천하’였다.

지난 시즌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12개 대회에서 300만 6871달러를 벌어들인 코다는 올시즌 현재까지 11개 대회에서 181만 8412달러를 쌓는 데 그쳤다. 상금 6위, 올해의 선수 14위로 다소 처져 있다.

평균타수 2위(69.69)로 샷 감각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지난해와 달리 승부처인 주말 경기에서 유독 힘을 잃었다. 올해 메이저 4개 대회 3,4라운드에서 코르다가 60대 타수를 기록한 적은 한번도 없다.

개막전인 힐튼 그랜드 배케이션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와 US여자오픈(이상 준우승)을 제외하면 우승 경쟁을 벌인 기억도 크게 없다.

세계랭킹 1위 자리도 위태롭다. 미국 선수 최초로 통산 100주 이상 1위에 오른 코다는 2위 티띠꾼과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지난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티띠꾼이 우승을 놓치는 바람에 간신히 1위를 지킬 수 있었다.

코다는 더욱 치열해진 경쟁 구도에 대해 “그게 골프다. 지난해 이 시점까지 나는 6승을 했는데, 올해는 다르다. 한 번 이기기도 어려운 경쟁이 됐다. 그만큼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다”고 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자리도 위태로운 넬리 코다 [게티이미지]

코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LPGA 투어는 답답하다.

최고의 흥행카드인 코다의 무승이 길어질수록 골프팬들이 떨어져나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세플러(미국)와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펄펄 날고 있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PGA 투어도 올시즌 초반 11개 대회에서 서로 다른 챔피언이 나왔지만, 3월 매킬로이를 시작으로 다승자가 쏟아졌다. 특히 미국인이 사랑하는 셰플러가 뒤늦게 우승 시동을 건 뒤 3승을 몰아쳤다. 시청률도 고공행진 중이다.

LPGA 투어는 지난 2009년 흥행카드 부재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수들의 선전 속 슈퍼스타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잇따라 은퇴했다. 시들해진 인기에 금융위기 한파까지 겹치면서 기업 후원도 빠져나갔다. 결국 몇년간 투어 규모가 축소되는 암흑기를 맞았다.

투어 인기에 다시 불을 지핀 건 역시 새로운 스타의 등장이었다. 2012년 10대 천재 렉시 톰슨(미국)과 리디아 고(뉴질랜드)가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LPGA 투어는 다시 대회 수를 늘리고 활기를 되찾았다.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왼쪽)와 3위 리디아 고 [게티이미지]

미국 골프계는 코다를 비롯한 스타들의 강력한 지배력을 기대하고 있다.

LPGA 투어를 중계하는 NBC와 골프채널 해설자인 톰 애벗은 골프다이제스트와 인터뷰에서 “올시즌은 코다와 티띠꾼, 리디아 고가 ‘빅3’를 이루며 압도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뛰어난 신인 선수들이 데뷔 시즌부터 바로 우승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PGA 투어에선 셰플러와 매킬로이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LPGA 투어에선 톱스타들이 기대만큼 우승을 못하고 있다. 골프팬 입장에선 당연히 스타선수의 우승을 기대한다”며 “코다가 지난 시즌 초반 연승을 달리고 리디아 고가 올림픽과 메이저에서 우승했을 때 골프계에 전율이 일었던 사실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스타 플레이어들의 선전은 (투어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제 남은 대회는 마지막 메이저인 AIG 여자 오픈을 비롯해 13개. 리디아 고가 AIG 여자 오픈 2연패에 도전하고 코다는 11월 안니카 드리븐에서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코다가 남은 시즌 대반전의 드라마를 쓸지, 아니면 새로운 스타가 투어에 새 바람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