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민경 등 젊은 작가 6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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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으로 기울어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쇠공 하나가 쉼 없이 구르고 있다. 바닥을 향해 쏟아질 듯 내려가지만, 쇠공은 결국 그 무게와 맞서며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벨트 위에서 끝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같은 자리를 맴도는 쇠공처럼 보인다. 이처럼 조호영의 설치작업 ‘스탠드 스틸(Stand Still)’은 반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물리적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심오한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단순해 보이는 작품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삶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어느 순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매일 조금씩 반복하며 그렇게 우리는 또 하루를 견딘다. 피로하다고 해서 쉽게 멈출 수도 없다.
이런 반복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된 전시가 바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챕터투에서 열린 그룹전 ‘반복의 기록(The Codex of Returns·사진)’이다. 감민경·박지원·배윤환·윤여성·조호영·허우중,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반복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더듬는다.
전시가 흥미로운 지점은 반복이라는 단어를 거창한 철학적 개념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가들은 아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감각으로 반복을 풀어낸다. 여기서 반복은 몸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하며, 물성이 되기도 한다.
가령 윤여성과 허우중의 회화는 그 출발부터가 반복에 기대고 있다. 윤여성의 ‘O의 겹침’은 원을 그리고, 또 그리고, 다시 겹쳐 그리며 선을 캔버스 위에 쌓아 올린다. 그런데 그 흔적들이 어느 순간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다. 반복이 스스로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허우중의 ‘라인스 8(Lines 8)’ 역시 마찬가지다. 선을 긋는 단순한 행위는 목적을 잃는 순간부터 비로소 반복의 본질에 닿는다.
반복은 피로와도 맞닿아 있다. 앞서 언급한 조호영의 작품 속 쇠공은 끊임없이 구르는 듯 보이지만 결국 제자리다. 그의 작업은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안에 깃든 피로와, 그럼에도 유지되는 긴장과 균형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배윤환의 ‘골든 수프(Golden Soup)’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반복을 이야기한다. 광부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갓 채굴한 황금을 끓여 수프로 먹는 기괴한 장면. 반복되는 채굴·소비, 끝없는 순환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믿고, 획득한 그것을 사용하고 소모한다.
‘반복의 기록’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작품들은 결국 우리 모두가 남긴 자취를 뜻한다. 겹쳐진 원·선, 쉼없이 구르지만 제자리에 머무는 쇠공 등은 시간 속에 켜켜이 쌓여 삶의 흔적이 된다. 전시는 묻는다. 이러한 반복되는 행위는 과연 무의미한가, 아니면 그 흔적이 우리 존재를 증명하는 기록이 될 수 있는가. 그 물음 안에서 관람객들은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의료기기전문기업 유파인메드와 갤러리바톤이 협업해 운영하는 챕터투는 젊은 미술 작가들을 위한 일종의 대안 공간이다. 전시만 열고 작품 판매는 하지 않는다. 전시는 다음달 14일까지 열린다. 이정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