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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국내 한 시골 마을에서 홀로 살아온 80대 할머니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판정을 받아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할머니는 2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후 혼자 시골에서 지내면서 성관계는 물론 수술이나 입원 등 병력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감염 경로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7일 국제학술지 ‘임상 사례 보고’(Clinical case reports)에 따르면 국내 한 병원 의료진은 최신호 논문에서 지난해 림프종으로 항암 치료를 하던 중 혈액검사에서 80대 여성 A씨가 HIV 양성으로 최종 진단된 사례를 발표했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말한다. HIV 바이러스 감염자가 면역 결핍이 심해져 합병증이 생기면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이다. 국내 HIV 감염인은 20∼40대가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젊은 층에 집중돼 있다.
의료진은 A할머니의 혈액 내 면역세포(CD4) 수가 많고, 바이러스 농도가 높은 점으로 미뤄 이미 수년 전에 HIV 감염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감염 경로는 가족과 본인의 설명을 종합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20여년 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고, 이후 할머니는 줄곧 혼자 시골에 거주하며 성관계도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남편이 생전 대학병원에 입원하며 여러 차례 시술과 검사를 받은 적이 있어 진단되지 않은 HIV 감염 가능성은 작았다는 게 가족의 주장이다.
또한 A할머니는 림프종 진단 전까지 수술이나 입원은 물론 수혈, 주사 약물 사용, 침술, 문신 등의 경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로 사는 두 아들 역시 이후 시행된 검사에서 모두 음성으로 판정됐다.
이렇듯 외부적 감염 요인이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HIV에 감염됐다는 것은 할머니와 가족들과의 문답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시술 경험이나 수혈, 성관계 등의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의료진은 “고령자의 성생활을 아예 배제하거나 HIV를 노인의 질환으로 보지 않는 편견이 진단 지연의 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HIV 검사는 13세에서 64세 사이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권장되고 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 지침이나 80세 이상 감염자 통계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의료진은 또 “사회적 고립과 낮은 건강정보 이해력도 진단이 늦어지는데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A할머니는 ‘HIV’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하는 등 건강 정보에 대한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치료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은 오해”라며 “A할머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에 잘 반응했고, 면역 수치도 서서히 회복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를 계기로 고령자에 대해서도 임상 상황에 따라 HIV 검사가 반드시 고려돼야 하며, 사회적으로 취약한 노인의 경우 선제적인 검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