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트럼프 농간?”…‘그린란드 단속’ 덴마크, 美 외교관 소환한 사연[나우,어스]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촬영된 이 사진에서 한 시위자가 “우리는 팔려가지 않는다(We are not for sale)”**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덴마크가 진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백악관 관계자가 덴마크에 대해 최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권국에 대해 갑자기 진정하라니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일까요.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덴마크 외무부가 한가지 첩보를 확인하고 코펜하겐 주재 미국 최고 외교관을 초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마크 스트로 주덴마크 미국대사관 수석대사대리인데요. 현재 공석인 대사 자리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자리라고 하네요. 미국 입장에선 자국 외교관이 덴마크 정부에 불려 갔다고 하니 황당한 상황인 것이겠죠.

도대체 무슨 첩보가 접수됐길래, 덴마크는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 고위 외교관을 불러낸 것일까요?

논란은 ‘미국 시민들이 그린란드에서 덴마크 통치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장하려는 작전을 비밀리에 수행한다’는 첩보가 덴마크 외무장관의 귀에 들어가면서 시작됐습니다.

덴마크 공영방송 DR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와 관련이 있는 미국인들(최소 3명)이 이러한 시도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이 그린란드가 덴마크로부터 분리 독립해 미국과 합쳐지도록 하는 판을 만들려 했다는 것인데요. 이들 중 한 명은 ‘미국에 우호적인 그린란드인’ 목록을 작성하고 트럼프를 강력히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그린란드 정치인, 재계 거물,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고 하네요. 첩보 보고서에 지목된 미국인들의 신원은 외무장관도, 언론도 공개하지 않았는데요. 이때 백악관 관계자가 “덴마크는 진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부통령 JD 밴스가 그린란드에 있는 미군의 피투피크 우주기지(구 툴레 공군기지) 시찰을 마친 뒤 모습.[로이터]


그런데 덴마크는 미국을 왜 의심하며, 이토록 민감한 것일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거 발언 전력 때문입니다. 노골적으로 미국 행정부의 ‘야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요. 좀 심하다 싶을정도로 여러번 얘기를 했습니다.

2019년 9월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처음 사겠다고 했을 때, 덴마크 정부와 정치인들은 모두 당황했습니다. 당시 취임 두 달을 넘겼던 지금의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은 “멍청한 소리(absurd)”라고 반응했고, 정치인들은 “만우절 농담이냐”고 비아냥거렸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예의있게 말하는 방식이 아니다. 미국에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된다”고 응수했지요.

지난 1월 집권 2기를 맞이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내내 지속적으로 야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우리가 (그린란드를)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린란드 주민들이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한다” 발언

2025년 3월
- 미 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그린란드를 한 방향이든 다른 방향이든 반드시 차지할 것”, “그린드란드는 군사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발언
- 미국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미국은 그린란드가 필요하며 국제 안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우리가 필요하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까지 갈 것”이라고 발언

2025년 5월
-NBC 뉴스 인터뷰에서 “군사력을 사용해서라도 그린란드를 획득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언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과 국제 질서를 이유로 해당 영토를 획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요. 자원이 풍부한 북극 지역의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가 그만큼 매력적이란 설명으로 읽힙니다. 그린란드는 광물 자원이 풍부한 전략 요충지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이곳에 우주 전략 거점이기도 한 ‘피투피크 우주기지(과거 툴레 공군기지)’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중국과 러시아도 그린란드를 통해서 북극 항로·자원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덴마크 왕국은 덴마크, 그린란드, 페로제도 3개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중 그린란드 자치령이 이 3개 영토의 98%를 차지할 정도도 땅도 넓죠.

그린란드는 올해 3월 총선에서 ‘덴마크로부터의 조속한 독립과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강화를 주장한 정당’이 4분의 1의 득표를 얻어, 독립에 대한 의지가 읽힌다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는 트럼프 발언으로 인해 안달날 수밖에 없겠죠. 덴마크는 그린란드와의 긴장된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한편, 유럽 동맹국들로부터 지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누크의 피오르드에 얼음 덩어리들이 떠 있다.[로이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무력으로라도 취할 수 있다는 한 발언은 5만7000명의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큰 불안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의혹이 터지면서 불안감은 더 증폭될 것으로 보입니다.

덴마크 의회의 아야 켐니츠 그린란드 대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의혹이 트럼프의 광범위한 영토 장악 시도의 일부라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어 “나는 확실히 이것이 미국 정부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또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며 “이는 전적으로 그린란드인들의 몫”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덴마크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미국 고위 외교관을 불러들이면서,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관계를 망치는 어떠한 시도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제5열(내부 협력자 세력)’을 만들거나 그런 종류의 활동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국가 간 협력 방식에 반하는 것”이라며 “완전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우리는 미국에 대해 매우 분명히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껄끄러웠는지 한발 뺀 모양새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마크 스트로 주덴마크 미국대사관의 수석대사대리가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그린란드 정부·미국·덴마크 간 강력한 유대 관계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미국은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 동맹국인 덴마크와 그린란드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며 “트럼프와 그의 최고 보좌관들 모두가 그린란드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존중한다”고 밝혀왔음을 상기시켰다고 합니다.

덴마크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충성스러운 동맹국입니다. 나토 핵심 회원국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북극과 대서양 안보 전략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덴마크 외무부 장관이 미국 고위 외교관을 공식 소환했다는 사실은 이례적으로 ‘미국의 내정 간섭’에 대한 반발이란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번 사건으로 북극에서의 미국·중극·러시아 3강 구도 속에 덴마크-그린란드가 단순 ‘주변국가’가 아니라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점을 드러냈는데요. 덴마크의 이후 대응에 그만큼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누크의 한 식당에 앉아 있는 조에른 보아센. 그는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그린란드를 방문했을 때 그를 접대했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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