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방향을 알 수 없는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관련 발언들을 모아보면 정말 트럼프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가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공장 건설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은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 이전 바이든 정권의 반도체 산업 정책도 부정하고 심지어 이제 본인의 발언도 일관성이 없어지고 있다.

반도체는 미국에서 발명됐고 초기에는 당연히 미국이 반도체 제조 강국이었다. 그런데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팹리스)와 R&D 분야만 미국에 남겨두고 반도체 제조는 해외로 이전했다. 해외에서 생산되는 저렴한 반도체를 이용한 신산업에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됨에 따라 반도체를 생산하는 지역이 미국 정부에 더 이상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발생한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미국 국민의 대부분이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손꼽는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바이든 정권에서는 반도체 제조 시설을 구축할 기술과 자금을 보유한 미국 기업이 거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자, 외국 기업도 미국에 설비 투자를 하면 투자액의 일정 비율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이 2022년 8월 제정된 미국 ‘반도체 법’에 포함된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러한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과 대만에서 반도체 제조업이 번성한 것을 두고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갔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반도체 보조금 지급은 낭비라고도 주장했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반도체 보조금 폐지를 계속 주장했으며, 지난 4월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반도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과도한 관세를 부과해서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외국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곧바로 대만의 TSMC가 추가로 대미 투자를 발표하면서 관세 특혜를 기대했으나, 미국은 대만에 대한 상호 관세에 관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도체 품목별 관세는 아직도 발표 전이다.

지난 7월 말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여기서 반도체와 의약품은 최혜국 대우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곧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관세 100% 부과를 언급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반도체 관세를 200%, 300% 부과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 투자하고 있거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반도체 관세를 면제한다”라는 발표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최혜국 대우조차 믿기가 어려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미국 정부가 인텔에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제 보조금은 순수한 보조금이 아니게 된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미국의 반도체 산업 정책과 답이 없는 반도체 품목별 관세로 인해 우리 반도체 기업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만 한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말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산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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