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사모펀드, 국가기간산업에 적대적 M&A 공격”
일각 “홈플러스 부당거래 의혹 등 MBK 참전 명분 퇴색”
고려아연 “적대적 M&A 반드시 막아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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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서울 중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주총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이하 MBK)·영풍 간의 경영권 분쟁이 오는 13일로 1년을 맞는 가운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영풍 측이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 측 경영진을 상대로 고소·고발전에 나서는 등 분쟁의 불씨가 다시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미국발 관세 압력 등 엄중한 경제 상황에서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만 커진 격”이라면서 “양측의 대결 국면이 지속될 경우 자칫 안보와 관련된 핵심 소재 분야 국가적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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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고려아연 제공] |
▶고려아연, 미·중 갈등 속 전략광물 생산 역할론 부각= 12일 재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최근 군수·방위산업 분야에서 국내외 주요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공고히하며 미·중 갈등의 핵심인 전략광물과 희소금속, 희토류 분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고려아연은 최근 국내 화학 제조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군수·방위산업의 필수 소재인 전략광물 안티모니 50톤을 미국에 수출한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아연과 연 등을 제련하며 발생한 부산물에서 안티모니를 회수해 국내 화학 제조사에 공급하면, 해당 기업이 이를 삼산화안티모니로 재가공해 양사 협업으로 미국에 판매하는 구조다.
지난달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글로벌 1위 방산기업인 미국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핵심 희소금속 분야에서 한미 협력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록히드마틴과 MOU 체결에 맞춰 약 1400억원을 투자, 오는 2028년 상반기 상업가동을 목표로 울산 온산제련소에 게르마늄 공장 신설을 추진한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고려아연은 국내 유일의 게르마늄 생산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올해 회사 실적 상승세도 뚜렷하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 7조6582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상반기 매출액을 기록했다. 기존 제련사업 가운데 전략광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자원순환을 비롯한 신사업 부분에서 최근 회사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커진 것 역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제련업계에서는 고려아연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영풍이 올해 상반기 15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손실 규모를 3배 이상 키운 것과 대조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석포제련소가 환경오염 제재로 원활한 가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영풍의 별도 기준 영업손실 역시 14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0배 이상 늘었다.
반면 고려아연이 전략광물을 앞세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불리한 지분구조 속에서 적대적 M&A와 소송 리스크 등은 여전히 불안요인으로 꼽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영풍·MBK 측과의 경쟁 분쟁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소송은 24건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늘어난 비용과 배당정책 등 내년 주총을 앞두고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양측의 무의미한 소모전이 지속된다면, 한·미 협력의 열쇠가 될 ‘탈중국 공급망’ 확대 역할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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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관(왼쪽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마이클 윌리엄슨 록히드마틴 인터내셔널 사장,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게르마늄 공급·구매와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
▶“정부의 국가기간산업 보호 필요성 대두”…정치권도 공감대= 양측의 갈등이 장기전 양상을 띠면서 재계와 경제계 일각에서는 “국가기간산업에 ‘투자’라는 명목 아래 M&A를 시도하는 사모펀드의 접근법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6월 서울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 강원 세종대 교수는 “공적 자금의 성격을 지닌 글로벌 연기금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가 경제와 사업보국의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나 온타리오교사연금(OTPP) 같은 선진국의 연기금들은 단순한 수익 추구를 넘어, 투자 대상이 자국과 동맹국의 산업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MBK의 홈플러스 관련 법정관리 사태도 이 같은 우려를 키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MBK는 10년 전 막대한 자금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했지만, 올해 3월 초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게 했다. 정계와 노동계 일각에서는 “MBK 측이 미리 회생을 고려한 상태에서 단기채권을 발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상 기업회생을 결심하고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위법행위로 간주된다.
정치권에서도 사모펀드의 과도한 차입매수를 규제해야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최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모펀드의 차입한도를 원칙적으로 순자산액의 400%에서 200%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외에도 자기자본의 4배까지 가능한 차입한도를 2배로 제한하고 투자내역, 차입규모, 보수체계 등 사모펀드 운용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 먹튀 경영 방지를 위한 내용들도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MBK가 고려아연 지분 취득에 투입한 자금 1조5657억원 가운데 75%인 1조1775억원은 NH투자증권 담보대출로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풍과의 경영협력계약과 동반매각청구권 등이 현실화할 경우 추가적 차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고려아연 측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영풍MBK는 엄중한 시점에 기업의 명예와 가치를 훼손하고, 이를 통해 고려아연을 수익 극대화의 수단과 대상으로 삼겠다는 저의를 숨기지 않고 있다”며 “소모전을 멈추고, 본업 정상화에 매진하고, 자신들이 초래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