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대서양 동맹’…美·英정상회담 기대보다 불신, 왜?

트럼프 즉흥 외교에 불안 증폭…스타머와 현안도 엇갈려
美·英 회동, ‘협력 상징’보단 ‘혼란의 징후’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해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중 영국 국왕 초청으로 두 차례나 영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영 정상회담은 과거처럼 세계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때 미국과 영국은 세계 무대의 기둥이었으며, 양국 정상의 만남은 세계 질서가 예측 가능하다는 신호였다. 2차 세계대전과 얄타 회담 등 위기의 순간마다 양국 협력은 굶주림과 혼란 속에 의지할 만한 민주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WP는 이어 “국제 동맹, 다자 협력, 민주적 가치라는 안전 장치조차 지금은 지도자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며 “트럼프는 대서양 관계의 해결사라기보다 ‘혼란의 원인’으로 인식된다”고 평가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낸시 코엔 교수 역시 “사람들이 이번 회담을 통해 세계가 안정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며 “이 지도자들이 세계의 안녕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믿는 이도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합동 기지 앤드루스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있다. [AFP]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만에 끝내겠다”고 호언했지만, 전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지난달 미·러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공세를 확대하고, 드론을 폴란드와 루마니아 상공까지 띄우며 긴장을 높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 18일 총리 별장인 체커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스타머 총리는 유럽 동맹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끌어왔지만, 최근에는 러시아 제재보다 ‘트럼프의 협조 유지’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자지구 전쟁도 격화 일로다. 일부 지역은 기아 상태에 빠졌고,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 지상작전응 개시하며 다시 공격했다. 트럼프가 간헐적으로 휴전 중재를 시도했으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협상 중인 카타르 내 하마스 지도부를 공습했으며 미국 측에 뒤늦게 알렸다. 이는 석 달 전 이란 공습으로 트럼프의 핵협상 시도가 무산된 데 이어 또다시 그의 외교 구상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난 7월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 골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영국과 미국은 주요 현안에서도 엇갈린다. 스타머 총리는 조건부로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언급했지만, 트럼프는 “이는 하마스의 테러에 보상을 주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양국 지도자에 대한 여론도 싸늘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미국 내 40%에 그쳤고, 영국 내 호감도는 22%에 불과하다. 스타머 총리 역시 호감도 24%로 낮다. 영국인들의 44%는 트럼프의 방문 자체를 반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WP는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입장을 19차례나 뒤집었다”며 그의 즉흥적 태도가 외교 무대의 가장 큰 혼란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런던 외교 소식통은 “기술·에너지 협정이 일부 논의되겠지만, 철강·제약 관세 문제는 여전히 트럼프 한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런던대 캐슬린 버크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협상팀이 조율해 합의문을 마련했지만, 지금은 오직 한 사람의 즉흥적 결정만이 중요하다”며 “이제는 국가가 아니라 한 ‘예측 불가능한 인물’에 의해 국제 외교의 방향이 좌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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