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민간금융 중요성 커저…규제 걸림돌로
금융규제샌드박스 탄력적 운용…자회사 범위 확대
지방 중기 인센티브 강화…해외 대형 금융사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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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홍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24일 ‘은행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벼리 기자 |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저출산·고령화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부수업무와 자회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산 규모가 큰 은행권이 사회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는 국내 금융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핵심 과제로도 꼽힌다. <본지 9월 9일자 3면 참조>
권홍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4일 오후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은행이 단순한 금융중개를 넘어 비금융 업무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 미만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기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동시에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이처럼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그 밖에도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위기, 지방 인구 감소에 의한 지방소멸 등도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위협 요소다.
권 연구위원은 “이런 문제들은 공공성이 강하고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지속가능성)문제가 중요해지다 보니 민간 투자 요인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권 총자산의 41%를 차지하는 은행권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은행권에 대한 부수업무와 자회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그는 “은행에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허용하거나 투자를 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해 관련 업무를 더 수행하게끔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 부수업무란 여·수신 등 은행의 고유 업무나 겸영 업무 이외에 부수적인 업무를 말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은행업무의 ‘부수성’에 대한 정의나 판단 기준이 미비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혁신적인 사업에 뛰어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회사와 관련해서도 금융사가 금융업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회사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권 연구위원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에 대해서는 부수 업무를 탄력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소규모 실험을 거쳐 안전성이 확인되면 부수업무 신고를 신속하게 처리해주는 등 제도를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최소한 부수업무를 수행하는 회사는 자회사 범위에 포함되도록 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은행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권 연구위원은 “앞으로 부수업무나 아니면 자회사 관련 요구가 확대될 경우 별도의 부수업무 범위를 신설하고 사전 인가 등의 보완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점은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핵심 과제로 거론된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시책과 동향’ 보고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금융사와 빅테크가 디지털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규제체계를 정비해 금융과 비금융의 융합을 촉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융권 샌드박스 활용과 부수업무 허용 등 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비금융 사업을 영위하는 데 ‘칸막이 규제’가 여전히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현행법상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사 주식을 5% 이내로만 소유할 수 있다. 자회사 경영관리 등을 제외하고는 영리 목적의 다른 업무를 영위할 수도 없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210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영위현황과 개선과제’를 조사한 결과 88.1%가 “해외 금융회사 및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 있어 비금융업 진출을 막는 국내 칸막이 규제가 금융업 경쟁력에 불리하다”고 응답했다. ‘비금융업종도 함께 영위할 필요성이 있다’고 응답한 금융회사는 71.5%인 데 비해 실제 비금융업까지 영위하는 금융회사는 39.5%뿐이었다.
이들은 규제 개선을 위해 ▷금융회사의 부수 업무 범위 확대 ▷자회사가 영위할 수 있는 비금융업종 범위 확대 ▷비금융사 출자 한도 완화 ▷혁신금융서비스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은행권의 지방소멸 대응 방안과 글로벌 진출 전략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소멸 대응을 위해 지방은행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비금융 사업에 대해 부수업무로 허용하든지 자회사를 통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며 “복수 은행 체제인 지방 금융지주에 대해서 경영통합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 밖에 지방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에 지역경제 기여도 비중 확대 등 개선 방안을 언급했다.
이어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소형 자금 규모의 진출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없었고 현지 인력 활용도 좀 미미했다”며 “국내 금융기관이 힘을 모아서 컨소시엄을 구축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대형 금융회사의 지분을 인수해 대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사가 해외에 진출할 때 인허가 문제나 철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특히 원화의 안정성이 제고되면 해외 진출이 더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