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서 은행 이자도 못 내요” 이런 중소기업 2만개 육박

김승원 의원실, 금감원 ‘은행 한계기업 거래’ 자료
중소 한계기업 총 1.9만곳…실질적으로는 더 많아
한계기업 대출 잔액 45.5조원…3년 새 두 배 늘어
“한계기업 익스포저 유의해야”…등급평가 제한 등
김승원 “기업 자금여건 심각…실질적 지원책 필요”

5대 은행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중소기업이 1만90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이 밀집한 한 산업단지 전경. 기사 내용과는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5대 은행에서 돈을 빌린 중소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이 1만90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계기업 전체 대출 잔액도 3년 만에 두 배로 불었다. 단기적인 유동성 지원으로 버틴 중소기업들이 금융권의 주요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5대 은행별 한계기업 거래 규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과 거래 중인 중소 한계기업 수는 총 1만9210곳에 달했다. 지난 2023년 말 1만8890곳에서 약 1.7%가량 늘어났다.

한계기업이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을 말한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기업이 영업 활동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회사는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이 5361곳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4904곳, 4020곳 등으로 뒤를 이었다. NH농협은행은 3580곳, KB국민은행은 1345곳이었다. 다만 국민은행의 경우 작년 재무제표를 입수하지 못한 기업 수가 예년보다 많아 실제 수치는 더 컸을 것으로 추산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말 수치는 올해 9월 말 받았는데 이때 다른 은행들은 재무제표 미입수 화사 비중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국민은행은 다소 높았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국민은행의 한계 중소기업 수는 1500~1600곳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준으로면 전체 한계 중소기업 수도 1만9400곳 안팎으로 늘어난다.

한계기업 수가 늘어나면서 은행들이 한계기업에 내어준 대출 규모도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의 한계기업 대상 기업자금 대출 잔액은 45조5166억원 수준이었다. 2023년 말(37조7313억원)보다 20.6% 늘었다. 2021년 말(23조3479억원)과 비교하면 3년 새 두 배가량 잔액이 늘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16조650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 하나은행 13조8591억원, 신한은행 9조2678억원, 농협은행 3조6515억원, 국민은행 2조875억원 등 순이다.

이처럼 금융권에서 한계기업 규모가 커진 것은 최근 내수 둔화 등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기업들의 이익 창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 4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74로 지난 3분기보다 7포인트, 작년 4분기와 비교하면 11포인트 떨어졌다. BSI는 지수가 100 이상이면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BSI는 2021년 4분기(91) 이후 17분기 연속 기준치를 밑돌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2만6067곳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0.7% 줄었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6.2%에서 5.1%로 1.1%포인트 떨어졌다.

이에 더해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만기연장·이자유예 등 단기 지원 방안에 집중하면서 부실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연된 영향도 있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산업 구조를 생산적으로 재편하는 대신 유동성 지원 등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대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기업들도 정부의 지원으로 대출을 연장하며 좀비처럼 살아남는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도 외부감사 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17.1%로 1년 새 0.7%포인트 올랐다.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2023년 17.4%에서 지난해 18.0%로 0.6%포인트, 대기업은 12.5%에서 13.7%로 1.2%포인트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은 고위험 한계기업이나 공급과잉 이슈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취약업종 한계기업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 가능성이 있는 자본 비중)가 확대되고 있는 점 등에 유의해 기업신용 리스크를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 한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높은 한계기업의 신규 및 만기도래 여신에 대해 기업신용평가 시 재무등급 평가 제한 절차 체계를 갖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원 의원은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 중소기업이 2만 곳에 육박했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 여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라며 “금융당국은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 한계기업의 부실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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