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찬성국 입항·통상 제재 위협
1년 연기안, 57대 49로 ‘가결’ 결정돼
미국 ‘녹색사기 저지’ 자축…환경규제 노력에는 찬물
한국 해운업계, “중장기 구상 수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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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압박 속에 ‘탄소중립 항로’를 목표로 추진되던 글로벌 해운업계의 ‘넷제로(탄소배출 제로)’ 전략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번 결정으로 글로벌 기준 수립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던 국내 군소 해운사는 비교적 ‘숨통이 트이게 됐다’는 시각이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넷제로 추진에 앞장서 온 HMM과 현대글로비스 등 대형 해운사들의 전략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를 열고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채택 여부를 논의했지만, 끝내 결정을 1년 연기하기로 했다. 표면상은 ‘논의 연기’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찬성국들에 제재를 예고한 상황이라 사실상 무기한 중단으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는 IMO 회원국들이 추진해온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핵심 규제안이었다. 국제수역을 항해하는 5000t 이상 선박은 연료유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운항 부과금을 납부해야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해운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하는 만큼, 이 조치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이행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유엔이 주도하는 글로벌 탄소세이자 녹색사기”라고 비난하며 강력히 반대했다. 미국은 찬성표를 던지는 국가에 대해 입항 금지, 비자 제한, 통상 조사 등 불이익을 경고했고, 일부 중동·개도국이 이에 동조했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출한 ‘1년 연기안’이 57대 49로 가결되면서, 사실상 글로벌 해운업계의 탄소감축 협의는 멈춰 섰다.
아르세뇨 도밍게스 IMO 사무총장은 “이번 결과를 축하할 수 없다”며 “탈탄소 전환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EU와 브라질 등은 “다자간 환경규제의 심각한 후퇴”라며 유감을 표했지만, 미국은 “유엔의 기후세를 저지했다”며 자축했다.
국내 해운업계는 이번 결정이 미칠 파장에 대한 셈법에 돌입했다.
IMO에 앞서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U ETS) 등 규제에 대응해왔던 중대형 해운선사들의 ‘발빠른 대응’ 기조를 고려했을 때는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지만, 미주권이나 근거리 노선 사업을 영위해왔던 다수의 중소·중견선사들은 잠시나마 시간을 벌게 됐다는 점에서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유럽권 노선을 운영해왔던 장거리 해운선사들은 빠르게 환경규제에 대응해왔고, 앞서 IMO가 정한 2050년 넷제로보다 앞선 2045년에 넷제로 달성을 준비해왔다”라면서도 “그렇지 않은 나머지 선사들은 넷제로 대응에 뒤쳐져 왔던 것이 사실이기에 넷제로 대응에 대한 시간을 벌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도 “IMO의 시도가 중단되면 넷제로에 발빠르게 움직였던 유럽권 해운선사들의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면서 “이점에서 우리 해운선사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점쳤다.
한편 이번 IMO 결정의 여파는 해운업뿐 아니라 조선업과 항만 운영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암모니아·메탄올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 추진선박 수주를 통해 ‘친환경 선박 전환’을 성장동력으로 삼아왔지만, 글로벌 규제 속도 조절로 발주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다. 항만 운영사들도 이미 전력 사용량 감축, 육상전원공급장치(AMP) 설치 등 탈탄소 투자를 진행 중이어서, 규제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설비 투자비 회수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이번 IMO 결정은 다음 달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다자간 환경규제 체계가 흔들리면서, 각국의 개별 탄소정책이 강화되는 ‘분절화’ 우려도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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