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하느냐? 문신 있냐?” 동남아 모집책은 경계심에 묻고 또 물었다 [세상&]

태국 방콕 현지 조직 모집책과 나눈 대화 재구성. 이영기 기자.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혹시 기자 아니에요?”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납치, 감금 행태가 연일 도마에 오르는 가운데서도 국내 구인·구직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신규 조직원을 물색하는 구인 홍보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 범죄단체의 ‘취업 빙자 사기’ 사건이 알려졌지만, 일손이 필요한 동남아 각지의 범죄단체는 여전히 새로운 희생양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헤럴드경제가 직접 접촉한 모집책들은 최근 정부의 대응을 의식한 듯 여러 질문을 던지며 까다롭게 ‘검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분 확인을 위해 ‘국민건강보험 득실자격 확인서’ 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가 SNS로 접촉한 한 모집책은 태국 방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조직원이었다. 그는 TM(텔레마케팅·피해자 유인책)을 모집한다는 구직광고를 올렸다. 모집책은 검증과 회유를 반복하던 중 “기자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했다. 처음엔 채팅으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이후 SNS로 전화를 걸어 상세한 안내와 질문을 했다. 비대면 면접과 비슷한 식이었다.

해당 구직 광고에는 ‘각종 빚과 생활고 때문에 힘든 분들 저희 본사와 함께 새출발했으면 좋겠다’, ‘돈은 확실히 많이 번다. 주 1000만~2000만원 벌 수 있다’, ‘숙소·비행기티켓·비자·생활비 등 제공’, ‘한식·중식·양식·일식 등 3식과 간식, 커피 제공’ 등 각종 처우 등을 상세하게 적어놨다.

이들은 최근 캄보디아 대학생 사망 사건으로 알려진 범죄 조직의 폭력성을 의식한 문구도 넣었다. 광고에는 ‘오셔서 아닌 것 같다고 판단되면 그냥 가셔도 된다. 절대 붙잡지 않는다’, ‘분위기 조성하는 분은 바로 돌려 보낼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태국 방콕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 유인 광고. [독자 제공]


기자가 광고를 통해 모집책에게 “고수익 알바를 하고 싶다”고 연락하자 모집책은 공격적인 어투로 물었다. 1차 검증을 위한 작업이었다. 모집책은 “광고를 어디서 봤냐”며 “누구한테 받았냐. 해당 대화방 링크를 달라”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러한 검증을 통과한 후 나이를 말하면 전화가 시작됐다.

모집책은 전화를 시작하자마자 고수익 ‘알바’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다. 최근의 폭력 사태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회유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모집책은 “알바는 쓰고 버리는 거 아니냐”며 “저희는 알바 말고 의리있게 쭉 같이 갈 직원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집책은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아냐 ▷하려는 이유가 뭐냐 ▷과거에 ‘장(대포통장)’ 또는 ‘출(현금 인출책)’을 해본 적이 있냐 ▷문신이 있는지 ▷마약을 투약하는지 등을 물었다.

이어 기자가 “현지에 가면 업무 강도가 어떻냐”며 “군대처럼 엄격하게 생활하냐”고 물었다. 모집책은 “여권이나 폰 안 뺏고 근무 후에는 자유시간이다”라면서도 “근데 여기와서 술 먹고 마약 하면서 사고 치면 우리도 시끄러워진다. 그런 건 좀 이해해야 한다”고 통제의 여지를 남겼다.

간단한 전화 면접을 마친 후 모집책은 근무 환경과 처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모집책이 소개한 근무 환경은 솔깃할 만했다. 업무는 TM(피해자 유인)이었다.

태국 방콕 현지 조직 모집책과 나눈 대화 재구성. 이영기 기자.


근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반’으로 그 후에는 자유시간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또 방콕행 항공권과 숙소, 1개월의 적응 기간 동안 생활비도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모집책은 급여는 최소 1000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서 2년 정도 일하고 돌아가서 장사하거나 집 사는 사람들도 있다”며 “초보더라도 월 1000만원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급여는 고정급이 아닌 건당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급된다고 안내했다.

면접과 간략한 소개를 마치자 마지막 검증이 이어졌다. 모집책은 ‘국민건강보험 득실 자격확인서’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지 볼 수 있는 신원 검증 방법이었다. 해당 확인서와 함께 여권을 보내면 방콕행 항공권을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끝났다.

이처럼 정부의 강력한 대응 속에서도 여전히 동남아 유인 범죄와 그 모집책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에 정부는 모집 광고 자체를 근절하기 위해 나선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7일 “캄보디아뿐 아니라 동남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불법 구인 광고를 긴급히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송통신미디어심의위원회, 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해당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해당 기관들은 불법 광고 노출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결과를 포털 사업자 등에 전달해 불법 광고 삭제 조치를 할 예정이다.

경찰도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20일 서울경찰청은 ‘재외국민 실종납치감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해당 TF팀을 통해 불법 광고가 게시된 플랫폼 운영자들이 자정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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