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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부동산 대책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중단하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을 돌연 철회했다. 당 지도부가 해당 법안을 ‘국정안정법’이라고 규정하고, 이달 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언급한 지 하루 만이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 방탄 입법”이라는 총공세에 나선 상황에서 여론 악화를 막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 등 당 지도부의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 추진을 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미 관세협상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성과, 국민보고대회 등에 집중할 때라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재판중지법 처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 “민주당은 국정안정법 처리를 생각한 적이 없다. 국민의힘이 자다가 홍두깨식으로 뜬금없이 이 대통령 재판 재개를 물었고 법원이 화답했고, 국민의힘이 연일 5대 재판 재개를 외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방치할 여당이 어디있나”라고 강조했다.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제부터 민주당은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호칭하겠다”며 “국정안정법 논의가 지도부 차원으로 끌어올려질 가능성과, 이달 말 정기국회 내에 처리될 가능성이 모두 열려있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당 지도부가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묻자 “민주당이 재판을 중지하기 위해서 먼저 꺼내서 이것을 거론한 것이 아니고, 국민의힘이 그 말을 하는 것인데 마치 민주당이 이것을 먼저 추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가 쌓이기 때문에 그걸 정확하게 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이 연일 이 대통령의 재판 재개를 촉구한 데 따른 ‘정당방위’ 차원으로 재판중지법을 논의했으나, 이 대통령의 재판 중지에 여당이 앞장선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당 지도부 논의를 거쳐 대통령실에 통보됐다는 게 박 수석대변인의 설명이다. 그는 “(전날) 지도부로 격상돼서 논의될 가능성을 말씀드렸는데, 그걸 오늘 최고위가 끝난 뒤 정 대표와 지도부의 논의를 통해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의 간담회를 통해 결정하고, 대통령실과도 조율을 거친 상황”이라며 “이 문제는 당내 다양한 의견 있겠지만 당내 의견 수렴 하는 과정까지 거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여당은 대선 직전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직후인 지난 5월 재판중지법을 발의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당 주도로 의결했다. 대선 직후인 6월 12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당시에도 본회의 개의 직전 법안 처리를 보류했다. 이 대통령 방탄 입법 논란이 커지자 속도 조절에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사법부가 ‘이 대통령 재판을 재개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법안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다시 나왔다. 지난달 20일 법사위 국감에서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할 수 있느냐”고 질의하자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여기에 법원이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 1심에서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민간업자 5명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면서, 법안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앞서 이 대통령 재판 재개 여부를 둔 여야의 공방으로 ‘헌법 84조’ 해석을 둘러싼 논쟁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선 이미 여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당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헌법 84조에 따라 재판이 중지되는 것인지를 두고 법조계·정치권의 갑론을박이 이어진 바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에도 이 대통령의 재판 재개를 연일 요구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12개 혐의로 기소돼 5개의 재판을 받고 있고, 그 중 공직선거법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며 “항소심에서 내일이라도 재판을 다시 시작한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이재명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이재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까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 ▷위증교사 혐의 사건 2심 ▷대장동·위례·백현동 개발비리 의혹 및 성남FC 의혹 사건 1심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 1심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사건 1심 등 총 5건의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이들 재판은 모두 기일을 추후 지정하기로 하면서 중단됐다.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 재판을 연기하면서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