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분양가·대출규제 겹악재 여파
무주택자 부담↑, 현금부자만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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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와 주택의 모습 이상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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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부자가 아니라면 청약 시대는 끝난 것 같아요. 지난달 10년간 보유했던 청약통장을 해지했습니다. 언젠간 청약에 당첨될 수 있는 헛된 꿈에 기대를 걸었는데, 이젠 청약통장에 저축한 목돈으로 비트코인이나 금에 투자하려고요.” (30대 직장인 A씨)
한 달 새 청약통장 가입자가 2만명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고공행진 하는 데다 청약 당첨 확률은 ‘로또’ 수준으로 높아지자 청약 통장을 깨는 가입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실거주 의무 강화로 분양 대금을 현금으로 자납해야 하는 압박까지 커지면서 자금 여력이 부족한 수요자들의 청약 시장 이탈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는 2634만9934명이다. 주택청약종합저축과 청약저축 등 모든 통장을 합친 규모다. 전월(2637만3269명) 대비 2만3335명 감소했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2679만4240명)에 비해선 44만4306명이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2년부터 내림세다. 특히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길고 납부 금액이 많은 1순위 가입자가 청약통장을 해지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1순위 가입자는 1737만783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789만9748명)와 비교해 1년 사이 52만1917명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2순위 가입자는 889만4492명에서 897만2103명으로 7만7611명 증가했다.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이탈하는 것은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은 상황에서 정부가 대출 규제까지 강화돼 청약의 장점이 희석되면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4547만원으로 1년 전보다 2.96% 상승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등 분양가 상한제가 여전히 적용되는 지역에선 ‘로또 분양’이 공급되고 있지만, 당첨 확률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가깝고 이마저 정부의 대출 규제로 더 좁아지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이 시행되면서 분양 예정 단지들의 중도금과 잔금대출 한도가 대폭 축소됐다. 그동안 분양가의 60~70% 수준이었던 중도금은 전액 대출이 가능했지만, 이번 대책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로 축소됐다. 잔금 시점에서도 분양가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한도 제한을 받는다. 시가 15억원 이하는 6억원, 15억~25억원은 4억원, 25억원 초과는 2억원 등이다. 전세를 줘 잔금을 내는 방법도 차단됐다.
이처럼 청약 중도금과 잔금 대출 모두 대출 규제 대상이 되면서 무주택 서민층의 자금 압박이 커져 청약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 기간이 길지 않고 현금 여력이 부족한 30·40세대는 청약을 포기하거나 상대적으로 입지가 떨어지는 단지에 청약통장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입지가 우수하고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양가 상한제 단지는 현금 부자만 도전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청약 통장 가입자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청약 시장은 기축 아파트와 비교해 당첨만 되면 중도금 대출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파트 가격 구간별로 한도 제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예비 청약자들은 서울 아파트가 고분양가로 책정되면서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로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