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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검사님이) 애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애들 봐야될 것 아니냐. 여기(구치소) 계속 있을거냐. 우리는 배를 갈라서 장기를 다 드러낼 수도 있고, 환부만 도려낼 수도 있다. 내려가서 밤새 고민 좀 해보고 내일 담당 검사와 이야기를 해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320호 법정. 카키색 수감복을 입은 남욱 변호사가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열린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이날, 남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부장 이진관)가 진행하는 이재명 대통령,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의 대장동·위례·성남FC 등 배임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수염이 자라고 다소 수척해진 남 변호사는 ‘대장동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그동안의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검찰의 강압적인 태도에 못 이겨 원하는 대로 답을 해줬지만 이 대통령과 정 전 실장의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지난주 금요일에 선고를 받고 그저께 판결문을 받았습니다. 3분의 1쯤 읽다가 나왔는데 판결은 이렇게 났지만 제가 경험한 사실관계는 이러하다는 이야기를 말씀 드려도 된다면, 그런 부분을 포함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남 변호사는 이날 본격적인 증인 신문에 앞서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1심 판결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심 판결문에는 이 대통령과 정 전 실장이 각각 405회, 266회 언급됐습니다(각주 포함).
1심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2부(부장 조형우)는 이 대통령과 정 전 실장의 혐의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수차례 ‘성남시 수뇌부’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정 전 실장과 유 전 본부장, 대장동 민간업자들과의 유착관계가 자세히 적혀있었습니다.
첫번째 화두는 이른바 ‘의형제 모임’이었습니다. 2014년 6월 28일 한 주점에서 유동규, 김만배가 이 대통령의 측근인 정 전 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모인 자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의형제’를 맺었고 사실상 김만배를 포함한 대장동 일당이 대장동 개발 사업자로 내정됐다는 겁니다.
대장동 민간업자 1심 판결문(25.10.31)
피고인 유동규, 정진상, 김용은 평소 고위 법조인들과 두터운 친분을 내세워 이재명과 관련된 각종 형사사건 정보를 전해주던 피고인 김만배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2014.6. 피고인 김만배를 만나 소위 ‘의형제’를 맺자고 제안하였고, 피고인 김만배는 그 자리에서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하게 된 경위 등을 설명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탁을 했으며 정진상, 김용, 피고인 유동규는 이를 수락해 2015. 상반기까지 주요 절차를 끝내겠다고 하였는데, 피고인 김만배는 이러한 사실은 피고인 남욱, 피고인 정영학과도 모두 공유하였다.
하지만 남 변호사는 의형제 모임에서 사업자로 내정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판결문에 ‘2014년 6월 28일 사실상 내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돼있다. 최초 수사 받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정도로 조사를 받았는데 재수사가 이뤄지자 유동규가 그날 사업자로 내정됐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며 “저는 김용, 정진상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고 수사 과정에서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재명·정진상 배임 혐의 85차 공판(25.11.07)
남욱 유동규가 검사들의 질문에 대해 2014년 6월 18일에 사실상 남욱, 김만배 등을 사업자를 내정했다는 방향으로 진술을 했고 1심 판결문이 (그걸로) 배임까지 갔습니다. 2014년 6월에는 사업자로 내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환지방식, 수용방식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사업자부터 내정했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중략)
‘건설사 배제해 달라고 했다’, ‘유동규 본부장이 정진상 실장님과 상의했고 시장님에게 보고해서 승인받았다’ 이런 내용이 굉장히 많은데… 다 처음 들은 내용입니다. 검사님들이 ‘그러지 않았겠느냐’라고 질문하시면 ‘제가 경험한 것은 그렇지 않지만 시스템이 그랬다면 그렇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답변했는데 판결문에 사실인 것처럼 유죄 증거로 돼있는 상황입니다.
남 변호사는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한 3억원의 뇌물에 대해서도 기존과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유 전 본부장이 개인 채무 변제를 위해 3억원을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해당 금원이 정 전 실장, 김 부원장 등 ‘윗선’에 전달되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장동 민간업자 1심 판결문에는 2014년 오고간 3억원이 대장동 민간업자들과 ‘성남시 수뇌부’의 유착관계 형성의 결정적 계기로 지목됐습니다.
대장동 민간업자 1심 판결문(25.10.31)
피고인 유동규는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편의 제공 등의 대가로 피고인 남욱으로부터 2013. 4.경부터 8.경까지 수차례에 걸쳐 약 3억 원을 교부받았고, 그중 일부는 김용이나 정진상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중략) 피고인(유동규)은 2013.3.20경 남욱에게 3억원을 요구하면서 ‘나도 커야 될 거 아니야, 널 도와주려면’, ‘내가 크는 데, 베팅을 좀 해야 될 데가 있다, 내가 여기서 자리를 잡고 크는데 그걸 좀 도와주라’라는 말을 한 것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으로서는 2013.4경 무렵 공단의 기획본부장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거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측면에서 당시 이재명의 측근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정진상, 김용에게 뇌물을 교부하려는 동기와 의사가 있었다.
검찰이 남 변호사에게 “유동규가 개인으로 사용하는 돈 외에도 더 높은 분에게 상납할 것으로 봤던 것 아니냐”고 묻자 남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 그때는 김용, 정진상, 형들에게 준다는 말이 아예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형들 준다’는 것이 좋겠다면 녹취록에 나왔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당시 3억원이 정 전 실장,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되는 것을 알았다면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당시 녹취록에 해당 내용이 담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그때 녹취되는지 모르고 상사한테 보고하듯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대화 내용을 전화로 다 이야기해 줬다. 그런 내용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검찰 조사 당시 상황을 보다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재명·정진상 배임 혐의 85차 공판(25.11.07)
검사 2022.11.1자 증인(남욱)의 조서를 보면 증인이 2013년부터 동규에게 돈을 줬는데 2013.7부터는 김용, 정진상에게 전달되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중략) 증인 스스로 유동규가 자금을 잘 전달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말한 것 같은데요?
남욱 그렇지 않습니다. 받은 쪽(유동규)이 자백해서 나왔고 수사 과정에서 나눈 대화가 정리돼서 답변이 정리돼서 저런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검사가 질문하고 제가 답변한게 아닙니다. 검사가 “김용이 가져간 거 본 적 있어?”라고 해서 “없다”고 답하면, “그걸 어떻게 아느냐. 가지고 가지 않았겠느냐”라고 다시 묻고 그러면 “그랬겠죠” 답했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뤄지고 정리된 답변이 조서에 담긴 겁니다. 제가 처음부터 저렇게 말한건 아닙니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에서는 남 변호사가 ‘스스로’ 정 전 실장, 김 전 부원장을 언급한 것처럼 적혀있지만 실제는 이와 달랐다는 겁니다. 유 전 본부장의 자백을 확보한 검찰이 ‘다 알고 있다는 듯’ 남 변호사를 추궁했고, 남 변호사가 마지못해 추측성 답변을 하면 이를 정리해서 조서에 담았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에 반박했습니다. 기록 상 유 전 본부장이 정 전 실장, 김 전 부원장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자백한 시점은 2022년 11월 20일로 남 변호사의 진술 이후 시점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자 남 변호사는 2022년 10월께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과 일종의 ‘대질 신문’을 여러차례 받았다고 증언 했습니다. 조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유 전 본부장이 정 전 실장, 김 전 본부장에 대한 뇌물을 진술한 대가로 감형을 약속 받았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저때 자백하고 유동규가 출소한 이후에 저와 대화하면서 계속 ‘자기는 3년만 살면 된다’고 말했다. 누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여러차례 말해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다. 못해도 7년이다’라고 말해줬다”며 “결국 (1심에서) 징역 8년이 나왔는데 무척 놀라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자백이 이뤄졌는지 저도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바뀐 진술이 얼마나 인정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앞서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도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 조서를 부정하면서 ‘조작된 증거로 유도신문을 당했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증언했지만,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2부(부장 조형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정 전 실장 재판부는 남 변호사에게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대해 여러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면으로 내주시면 다 읽어보겠다. 양이 많아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시간이 걸려도 다 정리해서 제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 변호사의 바뀐 진술은 이 대통령과 정 전실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