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달성하려면, 車부품사·철강공장 문 닫아야”

NDC 하한선, 기업 요구보다 5%P 높아
산업계 “실현 불가능한 목표” 반발 확산
“내연차 퇴출 수준 충격…구조조정 우려”
석화업계도 “중국 침공 여지만 키울 것”


당정이 2035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당초 산업계 요구안보다 하한선을 5%포인트 높은 ‘53~61%’로 결정한 가운데 산업계가 “실현 불가능한 수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경북 포항시 포항제철소에서 현장 직원이 주요 철강 설비를 점검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당정이 2035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당초 산업계 요구안보다 하한선이 5%포인트 높은 ‘53~61%’로 결정했다. 산업계에선 이 목표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수치라는 데에 입을 모으고 있다. 탄소 감축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규제로 기업 비용 부담이 늘면서 중국발 저가공세 위협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업계 우려다.

▶2035 NDC 하한선, 산업계 요구보다 5%포인트 높여=10일 정부 등에 따르면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서울공관에서 제4차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2035년 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정했다. 앞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시한 두 가지 안, ‘50~60%’ 혹은 ‘53~60%’에서 시민사회 의견을 더 반영해 상한선을 1%포인트 높인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 뒤, 제30차 유엔기후변홯벼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다음달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최종안을 제출한다. 다만 이번 감축안이 당정에서 합의된 내용인만큼 사실상 최종안까지 그대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무공해차 보급 목표치, 실현 불가능”=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도 고려했다는 게 당정 입장이지만, 산업계 반응은 다르다. 당초 산업계가 제시했던 감축 목표안인 48%보다 하한선이 5%포인트 높아진 데다, 61%라는 상한선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문별 목표를 보면, 건물 부문 감축 목표는 50%로 하한을 설정했을 시 40.1%였는데, 이번에 53.6%로 늘었다. 수송 부문은 50.5%에서 60.2%로 늘어나게 됐다.

정부의 이번 NDC 계획대로라면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도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호소도 나온다.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책정한 2035년 무공해차(전기차·수소전기차) 보급 목표는 누적 952만대다.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 감축한다는 가정에 따른 것으로, 감축 목표를 61%까지 더 높이면 무공해차 보급 목표는 한층 늘어난다.

지난해까지 국내에 등록된 무공해차는 72만2000대(전기차 68만4000대·수소차 3만8000대)다. 산술적으로 올해부터 2035년까지 무공해차를 매년 80만대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연간 판매량(14만5000대) 대비 5배 급증한 것이다.

업계는 NDC가 강행될 경우 내연기관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는 대다수 자동차 부품사가 도산 위기에 내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정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치는 실현 불가능”이라며 “부품 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고용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국내 부품사 약 1만 곳 중 절반(45.2%)은 엔진·변속기·연료·배기계 등 내연기관 부품을 제조하고 있고, 1차 협력사만 추려도 86.5%는 전기차 등의 매출 비중이 30%도 안 된다. 급격한 전동화 전환이 오히려 중국 전기차 공세를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자동차 업계에서는 노동계도 정부의 NDC 목표가 과도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은 KAMA,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와 함께 “산업의 현실을 무시한 급격한 전환은 오히려 고용 불안과 기술 경쟁력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정부에 전달했다. 정부 NDC 계획에 노동계까지 나서 정부에 건의한 첫 사례다.

산업 구조상 탄소 배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철강 업계도 정부의 이번 목표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철강업이 지난해 산업부문 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한 비중은 35%(약 1억톤) 수준이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선 48% 목표도 어려워, 하한선 53% 달성을 하려면 아예 공장을 닫는 방법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수소환원제철 설비도입 시점 2037년…“업계상황 고려 안한 목표”=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이 국내에서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도 업계 걱정거리다. 대표적인 예가 포스코가 개발하고 있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활용해 전기로 쇳물을 제조하는 기술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시각은 다르다.

남정인 한국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업계에선 수소환원제철 사용설비 도입 시점을 2037년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NDC 수립 시 탄소중립 핵심기술 상용화 시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망에 따라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시점이 늦춰질 경우 이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철강업계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NDC 규제로 인한 부담이 기업들의 투자 동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아직 온실가스 감축 기술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선 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화학 업계 등 중국발 저가공세로 타격을 받고 있는 업계 불황이 더 길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대규모의 친환경 설비 투자가 필요한데, 이런 여력이 현재로선 전혀 없다”며 “석유화학 시황이 언제 개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친환경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라고 호소했다.

박혜원·양대근·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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