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일 변호사·이재훈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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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 본점 [연합] |
인터넷과 SNS에서는 요즘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주문으로 돈 버는 법”이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API 주문이란 사용자가 직접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프로그램이 거래소 서버와 직접 통신해 자동으로 주문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잠든 사이에도 일하는 ‘로봇 트레이더’를 고용하는 셈이다.
가상자산거래소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한 번 설정만 해두면 투자자가 잠든 새벽에도 프로그램은 묵묵히 사고판다. 업비트, 빗썸 등 주요 거래소들이 API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련 소스코드도 인터넷에 널려 있으니, 기술만 알면 누구나 자동매매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다.
그 결과, 과거 증권시장에서 기관투자자만 하던 프로그램 매매가 가상자산시장에서는 대중화되었고, 전체 거래의 70~80%가 자동화된 API 거래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이 편리한 자동매매가 언제든 시세조종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은 두 가지 사례를 적발했다.
첫 번째는 ‘인위적 시세상승형’이다. 우선 특정 코인을 미리 사둔 뒤, 프로그램으로 고가매수 주문을 반복 제출해 가격이 오르는 듯한 착시를 만든다. 일반 투자자가 ‘오르기 시작했구나’라고 판단해 따라 사기 시작하면 범인은 미리 설정한 목표가에서 매도해 차익을 챙긴다.
두 번째는 ‘거래량 부풀리기형’이다. 여러 계정이 조직적으로 협력해 초단기 매수·매도 주문을 반복해 거래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꾸민다. 거래소 화면은 마치 심장이 두근거리듯 초당 수차례 가격이 깜빡이고, 이용자들은 ‘시장이 살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자동매매 프로그램은 조건이 충족되면 0.1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사람의 손이 닿기 전 이미 수십 건의 주문이 만들어지고 취소된다. 효율적 거래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속도는 불공정거래 세력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 버렸다. 실제로 이번 사례에서도 조작은 단 몇 분 만에 시작되고 끝났다.
투자자로서는 눈앞의 급등세나 거래량 폭등 앞에 냉정해져야 한다. 차트가 춤을 추는 순간, 그 리듬을 만든 건 사람의 손이 아니라 알고리즘일지도 모른다. 금융당국은 이런 초단기 시세조종에 맞서 감시 체계를 ‘일 단위’에서 ‘분 단위’로 세분화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제 시장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감시의 시계도 앞당겨지는 셈이다. 수백분의 일초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대, 시장의 질서를 지키는 싸움도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