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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림 감독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신은 불러도 오지 않았지만, 남편의 발길질은 늘 코앞에 와 있었습니다.” (‘당신이 죽였다’ 최종회에서 ‘희수’의 대사 중)
깜깜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서 ‘희수’(이유미 분)는 숨죽여 울었다. 죽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남편의 폭력은 그에게 상처를 남겼고 주변인, 아니 사회의 방관은 그래도 벗어나 보려는 그를 더 깊은 어둠으로 한없이 밀어 넣었다.
끊어내지 않으면 끊을 수 없다. 희수는 그의 상처를 알아본 친구 ‘은수’(전소니 분)와 서로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답을 실천하기로 한다. 두 여자는 자신들의 방법으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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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제공] |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최악일지도 모르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차마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응원하게 되는 이들의 여정은 마음속 어디엔가 숨어있던 죄책감을 툭 건드린다. 폭력과 방관은 가장 먼 듯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당신이 죽였다’라는 제목은 불편하면서도 무겁다.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는 ‘VIP’(2019), ‘악귀’(2023) 등을 연출한 이정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일본 소설 ‘나오미와 가오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희수’와 ‘은수’를 통해 가정 폭력이란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춘다. 생존자가 처한 처참한 현실을, 드라마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대로 드러낸다. 편히 앉아서 보기 힘들고, 웃으면서 볼 수도 없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이정림 감독을 만났다. 단지 흥행만을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는 감추고 싶은 사회 문제를 들춰내며 제작진이 했던 섬세한 고심들이 답변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정 폭력이 사생활의 영역으로 다뤄지는 것이 아닌, 사회 문제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자칫 남녀 갈등으로도 번질 수 있는 예민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 감독은 가정폭력 관련 수업을 듣고, 폭력에 대한 서적들도 두루 읽으며 이번 드라마를 준비했다. 세심한 고민 속에 몰입감 넘치는 서사와 연출을 입힌 드라마는, 애초 의도했던 목표에 순조롭게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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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제공] |
작중 ‘희수’는 남편 진표(장승조 분)의 매일 같은 폭력에 시달리며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주변의 의도적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 죽어간다. 백화점 VIP 담당 직원인 친구 ‘은수’는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눈감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부둥켜안고 고통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저항도 포기해야 했던 희수와 희수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은수는 짙어지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살인을 공모한다. 멈추지 않을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드라마는 평범한 두 여자가 살인이란 극단적 행동에 도달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수위 높은 폭력과 시들어가는 생존자의 일상을 따라가며, 시청자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함께 자연스레 두 여자의 편에 서게 된다.
“어쨌거나 희수와 은수는 큰 선택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의도한 ‘불편함의 수위’는 시청자들이 (폭력 장면이 자주 나오는) 1, 2부를 견딜 수 있으면서, 똑같이 진표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죠. 무작정 잔인하게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서 작전을 잘 짜서 찍는 것이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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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제공] |
가정 폭력의 민낯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드라마는 때리고 맞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프레임에 넣지 않는 방식으로 최대한 적나라한 연출은 피했다. 실상은 보여주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실제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이 폭력 장면들을 견디면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진짜 조심하려 했어요. 촬영 감독님도 지나치게 직접적인 표현은 원하지 않으셨고요. 그 때문에 신체와 신체가 닿는 순간은 거의 없고, 앵글에서 한 명은 벗어나게 하는 식으로 처참한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했어요.”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폭력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촬영 현장에는 이들을 도와줄 심리상담사가 함께했다. 이 감독은 “희수를 연기한 이유미 배우도 너무 힘들지만, 진표를 분한 장승조 배우도 때리는 연기를 정말 힘들어했다. 살면서 누가 사람을 때려보겠나”면서 “상담사분이 있으면 배우들도 의지하며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 제작진들과 많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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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제공] |
드라마의 제목은 원작처럼 ‘은수와 희수’가 아닌 ‘당신이 죽였다’로 지었다. 드라마는 단지 직접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방관 역시 가정 폭력이란 사회적 문제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제목에서 ‘당신’은 여러 대상을 내포한다. ‘당신’은 실제 진표를 죽인 은수와 희수이면서, 가정 폭력 생존자들을 죽음까지 몰고 간 가해자들이기도 하고, 동시에 도움의 눈길을 외면한 방관자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드라마에 진짜 죽인 이야기도 있고, 그런 것을 멀리서 바라본 방관자들이 죽인 걸 수도 있으니 전반적으로 내포하는 제목이 됐으면 했어요. 그것이 원작과는 가장 다른 부분이지 않을까요. 물론 원작도 좋아하고, 이름이 곧 그 사람의 삶이란 생각도 들어서 제목 대신 부제에 인물들의 이름을 넣었죠.”
‘당신이 죽였다’는 원작과 다른 결말로 향한다.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나오미, 가오코와 달리 은수와 희수는 자신들의 죗값을 받기 위해 스스로 법정에 선다. 이 감독은 “은수와 희수를 떠올리니 왠지 자수를 할 것 같았다”면서 운을 뗐다.
“이 작품을 하기로 하고, 작가님과 처음 만나기 전에 생각했던 것이 엔딩이었어요. 시리즈를 만들면서 원작과는 조금 다른 엔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주인공 두 사람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저지른 죄의 값은 달게 받을 것 같았고, 그 과정에서 법 정신을 어떻게 보여줄지 생각하고 있다고 작가님에게 말씀드렸죠. 살인 이후 이들이 더 자유로워지려면 그러한 결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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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제공] |
시청자들이 ‘당신이 죽였다’를 어떻게 보면 좋겠냐는 질문에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고민 끝에 나온 답변의 핵심은 바로 ‘위로’와 ‘용기’였다.
“혹시 생존자분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용기 내서 행동한 그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배우들과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며 만들었거든요. 저와 배우, 제작진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