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넓은 나무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코피디아]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지구상의 총생물종은 약 3000만종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야생동식물의 남획, 각종 개발 및 환경오염 등으로 자연 서식지의 파괴에 따라 매년 2만5000종에서 5만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물종의 감소는 이용할 수 있는 생물자원의 감소뿐만 아니라 먹이사슬을 단절시켜 생태계의 파괴를 가속합니다. 올해는 1995년 1월 1일 국내에서 생물다양성협약이 발효된 지 30년이 됩니다. 동식물을 아우르는 종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지만 알지 못했던 신기한 생태 이야기를 ‘에코피디아(환경 eco+사전 encyclopedia)’란을 통해 국립생태원 연구원들로부터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큰키나무의 뿌리 분포[Gemini를 이용해 제작, 국립생태원 제공]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 용비어천가 제2장에 나오는 이 구절은 오랜 세월 동안 ‘깊은 뿌리’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시켜 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 바로 그 ‘뿌리’의 강건함을 상징하지요.

우리는 큰 나무를 보면 그 웅장한 줄기와 가지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굵고 긴 뿌리가 땅속으로 깊게 뻗어 있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나무는 깊은 곳이 아니라, 지표면에서 불과 50cm 정도 깊이의 얕은 흙 속에 전체 뿌리의 80~90%를 퍼뜨리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무도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땅속은 산소가 부족해 뿌리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공기와 물이 드나들기 좋은 겉흙층이야말로 뿌리에는 가장 적합한 삶의 터전입니다. 이 겉흙층은 낙엽이 쌓이고 분해돼 양분이 풍부하게 남은, 생명의 순환이 이뤄지는 공간입니다.

특히 나무의 생명을 책임지는 잔뿌리는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여린 존재입니다. 그 끝에 달린 뿌리털들이 물과 양분을 흡수하며, 나무 전체를 살려냅니다. 이 잔뿌리들은 땅속을 넓게 퍼져 나가며, 때로는 나뭇가지가 닿는 범위의 세 배까지 뻗기도 합니다. 나무는 얕은 땅에 뿌리를 넓게 내리고 땅과 공기, 물, 그리고 이웃 생명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 나무에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특히 큰 나무를 옮겨 심을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큰 고통입니다.

줄기 굵기의 8~12배 기준의 뿌리분[출처 : Lognwood Gardens. 2025,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나무의 줄기 굵기의 3~5배 정도 크기의 ‘뿌리분’을 만들어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전체 뿌리의 상당 부분이 잘려 나갑니다. 나무가 클수록 잘려 나가는 뿌리의 양이 많아지고, 그만큼 생명 유지에 필요한 힘을 잃게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소화기관의 대부분을 잃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나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일부 가지만 남기거나 서서히 죽어가기도 합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줄기 굵기의 8~12배 크기로 훨씬 큰 뿌리분을 만들어 옮깁니다. 잘라내는 뿌리를 최소화해 나무가 받는 충격을 줄이려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우리 역시 나무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이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옮겨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작은 나무를 심어 스스로 뿌리를 내릴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작은 나무는 환경에 맞춰 천천히 적응하고,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큰 나무를 옮길 때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생존율도 훨씬 높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5년쯤 지나면, 스스로 자라난 그 작은 나무는 어느새 눈에 띄게 자라나 있을 것입니다. 자연에는 ‘시간’이라는 성장의 법칙이 있습니다. 급하게 큰 나무를 세우는 대신, 천천히 깊게 뿌리내리도록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생태적 지혜입니다.

검은 나이테가 옮겨 심을 당시의 나무 굵기. [출처 : The practical science of planting trees(2013), 국립생태원 제공]


나무는 우리에게 셀 수 없는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 미세먼지 저감, 그리고 도시의 온도 완화까지. 하지만 그들은 아픔을 호소하지 못합니다. 가지가 잘리고, 뿌리가 잘려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견딜 뿐입니다. 나무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에 귀 기울이고,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뿌리 넓은 나무’는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기대며 오래도록 살아남는 존재입니다. 그 지혜는 어쩌면 우리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지도 모릅니다.

이수창 국립생태원 자생식물생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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