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포용금융, 금융 시스템으로 담보해야


최근 금융당국이 제시한 2025년 국정감사 업무계획의 핵심 아젠다는 ‘금융약자를 위한 포용금융 확대’로 집약된다. 서민과 소상공인의 과도한 채무부담을 경감하고 이들의 경제적 재기 기반을 확장해 금융의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겠다는 정책적 선언이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넘어, 금융 시스템이 사회적 안전망의 핵심 기제로 기능해야 한다는 거시적 관점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 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자금 배분 기능이 부동산 부문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은행의 신용이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 관련 대출에 집중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인 혁신 기술 산업이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은 심각한 구축 효과에 직면해 있다. 이에 정부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통해 자금 흐름의 물길을 실물경제로 돌리고자 한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부합하는 방향이다. 유럽의 은행들은 증권화(Securitization)와 같은 금융공학 기법을 활용해 위험가중자산(RWA)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친환경 산업 등 신성장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으며, 일본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제도를 활성화하여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의 생산적·포용적 기능 강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금융당국의 세부 정책 방향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적극 반영한다. 우선, 장기 연체 채무자에 대한 부채조정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상환능력이 현저히 낮은 취약계층에게는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보다 완화된 채무조정 메커니즘을 적용한다. 특히 ‘새출발기금’의 기능 개선은 주목할 만하다. 지원 대상을 총채무 1억원 이하, 중위소득 60% 이하 계층으로 확대하고, 상환기간을 최대 20년까지 연장하여 실질적인 채무상환능력 회복을 유도한다.

무엇보다 ‘서민금융안정기금’의 신설은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금융권과 정부의 공동 출연으로 조성되는 이 공적기금은 경기 변동성에 대한 종속성을 탈피하고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포용금융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는 기존 서민금융진흥원의 재원 조달 한계로 인해 정책의 연속성이 저해되었던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완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체의 내재적 안정성을 제고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선제적인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은 부실의 전이를 차단해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고,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회복시켜 시장의 건전성을 강화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금융기관의 잠재적 대손비용을 절감시키는 효과로 이어진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 산업이다. 따라서 포용적 금융은 시혜적 정책이 아닌 금융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인프라에 해당한다. 소비자의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금융은 경제 전체의 회복 능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다. 채무자에게 재기의 동력을, 소상공인에게 성장의 자본을, 서민에게는 신뢰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포용이다. 금융이 인간성 회복의 통로이자 사회적 인프라로 작동할 때, 한국 경제는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의 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후록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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