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치 양극화 극복이 12·3 계엄 트라우마 극복


“45년 전 내란보다 더 막대하게 국격이 손상됐고, 국민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줬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하기도 어렵다. 본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로 국가와 국민 전체가 피해자다”

내란특별검사팀이 최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내란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위증 등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규정한 문구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어느덧 1년을 맞는다.

핵심 연루자들을 둘러싼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내란특검의 규정은 현재까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그나마 공신력 있는 정의라 할 수 있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선출된 국가권력이 몇몇과 작당해도 대한민국 체제를 이처럼 쉽사리 뒤엎을 수도 있구나라는 쇼크와 두려움이었다. 5·16 군사 쿠데타와 10·26 사건, 5·17 계엄 확대의 직간접 경험을 지니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이 1년 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까닭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대한민국을 때론 선망, 때론 견제의 시각으로 바라보던 국제사회는 긴급뉴스를 타전하며 ‘민주적이라고 여겨온 한국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고 촌평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1년 동안 그야말로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종북세력 척결과 헌정질서 수호를 내세웠던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 선고 뒤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한 전 총리를 비롯한 다수의 국무위원과 군·경 수뇌부 역시 불법 비상계엄 가담 혐의로 기소돼 재판 절차를 밟고 있다.

반면 1년 전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으로 낙인찍힌 이재명 대통령은 조기대선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여야 정권이 교체됐다. 진상 규명이 진행 중이고 책임자 처벌은 궤도에 올랐으며 비상계엄 선포 요건 강화 등 일부 법·제도적 진전도 있었다. 다만 12·3 비상계엄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불식됐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트라우마는 일부 지지부진한 ‘내란척결’과도 맞닿아있겠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의 뿌리인 극단적 정치 대립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데 크게 기인한다. 물론 양비론을 펼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 전체가 피해자가 된 마당에 제 역할을 못하는 정치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1년 대한민국 정치는 양극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고 진영 갈등은 보다 격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극단으로 치달은 정치 대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현안마다 충돌하던 여야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목소리로 ‘당원’과 ‘당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소통과 타협을 통해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고 이해를 조정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 본연의 역할이자, 또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트라우마 극복은 정치 양극화 극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대원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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