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뉴스 보자마자 옷 주워 입어
현장 장병들 탄창 빼고 대치하는 모습
2차 계엄은 없겠구나 ‘안도의 한숨’
“위법 명령 거부하라” 현역 시절 강조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적극 찬성
적법성 여부 잘 판단하도록 교육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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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범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1일 서울 중구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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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상계엄을 발령한다는 소식을 뉴스로 보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고 황당했죠. 당장 여의도로 가서 우리 군인들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습니다”
전인범(66·육사 37기·예비역 육군중장)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은 “다행히 국회에서 부결되고 군인들의 움직임을 보니 2차 계엄은 없겠구나 안도할 수 있었다”며 1년 전 12월 3일 밤을 회고했다.
헤럴드경제는 12·3 비상계엄 사태 1년을 맞아 지난 1일 전 전 사령관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전 전 사령관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임관했다. 9사단 연대장을 거쳐 27사단 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부참모장 겸 유엔군사령부 정전위원회 수석대표 등을 지냈고 특전사령관으로 재임한 뒤 제1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군 시절 보국훈장 광복장, 미국 육군표창훈장, 화랑무공훈장, 미 동성훈장, 미 통합특수전사령부훈장 등 11개의 상을 받으며 ‘참군인’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사단장 시절 상급자 앞에서 입에 슬리퍼를 물고 ‘항의’해 병사들의 보급품 개선을 이끈 ‘슬리퍼 장군’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특전사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전 전 사령관은 707특수임무단(특임단)을 비롯한 특전사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최일선에 동원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특전사 중에서도 707특임단이 국회 진입에 동원됐는데 아무리 다양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라지만 국회를 접수하는 그런 임무를 하는 부대가 아니다”며 “그런 임무에 동원됐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정말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뉴스를 보는데 장병들이 계엄이라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뭔가 옳지 못한 일에 동원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았다”며 “상관의 지시를 따르긴 해야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해 모든 행동에 있어 조심스럽고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날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투입된 특임단 등 계엄군은 적극적인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일부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이 막히자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지만 곳곳에서 보좌진과 대치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아예 탄창을 제거한 빈 총기만 소지한 병력도 있었다.
전 전 사령관은 특전사 장병들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위 제대 행동대원들은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 군대가 어떤 명령을 듣든지 간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육사 1년 후배이자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는 군 생활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었다고 촌평했다.
전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모든 걸 군 생활에 걸다 보니까 대장 진급이 안됐을 때 충격이 굉장히 컸다고 들었다”며 “인간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적으로는 정말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전 전 사령관은 위법한 명령에 대해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담는 방향으로 추진 중인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제가 현역에 있을 때 수도 없이 부하들에게 얘기했다”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돼있는데 당연히 적법한 명령에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명문화돼 있지 않을 뿐 군인이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만 복종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전 전 사령관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의 부작용도 우려했다. 그는 “거부권이 있다고 해서 상관 말을 안 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적법한 명령은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적법성 여부를 잘 판단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12·3 비상계엄 사태 가담 또는 연루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데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했다.
적극 가담자 이외에 지나치게 광범위한 장병을 범죄인 취급하고, 의심하고, 처벌 대상으로까지 삼음으로써 자칫 군 사기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 전 사령관은 “당연히 내란세력은 잡아내 처벌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동원됐던 사람,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일부에선 이를 악용해 무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주 좋지 못한 현상들이 군 간부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잘못하다간 국가를 지키는 군 본연의 임무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 전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제대로 평가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인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사회 전반의 안보의식 강화와 국민 생명 및 재산 보호라는 군 본연의 임무 수행을 위한 훈련 강화, 그리고 군·병역 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그는 “군은 나라를 지키는 것을 지상과업으로 삼아야 하는데 정치권이 표를 너무 많이 의식하고 있다”며 “군 복무기간을 줄이고, 봉급을 올리고, 휴대전화도 풀었는데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전 사령관은 끝으로 “이전부터 누적돼온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상계엄까지 벌어졌다”며 “사관학교 등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연구·분석해 앞으로 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비상계엄 관련 문제들을 빠르고 확실히 마무리한 뒤 군의 사기를 높이고 훈련 여건을 마련해야 제대로 된 군 정상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대원·전현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