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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판도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AI칩(Chip)·챗봇(Chatbot·AI모델)·자본(Capital)’ 3대 전쟁이 본격화하며 엔비디아와 오픈AI의 독주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향후 1~3년은 글로벌 AI 권력지형이 재편되는 ‘대전환기’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균열의 시작은 구글이었다. 구글이 자체 AI칩 ‘텐서처리장치(TPU)’으로 그간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독보적 우위를 점했던 엔비디아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각각의 칩은 오픈AI와 구글의 AI챗봇 대리전으로 비화했다. 구글의 AI모델 ‘제미나이 3.0’(TPU 기반)은 그간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아온 오픈AI의 챗GPT(GPU 기반)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AI생태계 전반적으로는 아마존,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은 채권 발행을 동원해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이른바 ‘쩐의 전쟁’을 격화하고 있다.
AI칩 전쟁: GPU vs TPU vs 트레이니엄
“잠자던 거인이 깨어났다.”
월가가 내린 구글에 대한 평가다. 업계에선 구글의 TPU와 같은 특화한 주문형 반도체(ASIC)가 부상하면 엔비디아의 GPU와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고 AI칩 가격도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미나이 3.0’을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킨 구글은 GPU가 아닌 자체칩 TPU를 사용한다. TPU는 처음부터 딥러닝 수학 계산(행렬 연산)에 최적화된 맞춤형 칩으로 설계됐다. 한 번 입력된 데이터를 다수 연산에 반복 활용하고 중간 연산 결과를 외부 메모리에 저장하지 않은 채 인접 연산 유닛으로 즉시 전달한다. AI 모델에 최적화된 제품인 셈이다. TPU는 메모리 접근에 따른 병목이 줄면서 전력 효율도 높다. TPU는 GPU 대비 35%에서 최대 80%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GPU는 게임 그래픽 처리를 위해 개발된 뒤 AI 연산에 활용됐다는 점에서 TPU보다는 활용범위가 넓다. 범용 병렬 연산을 전제로 해 외부 메모리와의 데이터 입출력이 잦은 구조다. 이 때문에 GPU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블룸버그는 “구글은 10년 전 TPU를 처음 내놓았다”며 “구글 검색엔진을 더 빠르게 만들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 구글은 TPU로 대형 계약을 따내고 있고, 이는 TPU가 오늘날 대형 언어모델(LLM)을 학습 운영하는 데 쓰이는 엔비디아의 GPU에 대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미 시장에선 구글의 TPU가 AI칩 공급망을 다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메타가 구글의 TPU를 도입할지를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AI모델 ‘클로드’를 운영하는 앤트로픽도 지난달 말 구글의 TPU 100만 개를 탑재한 클라우드 이용 계약을 체결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AI칩 사업이 2027년 최대 100만개 출하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시총 4조달러 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구글은 TPU가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운 엔비디아 GPU를 대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구글의 도전을 의식한 듯 엔비디아는 곧바로 견제구를 날렸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25일 엑스(X·옛 트위터)에 “모든 AI 모델을 구동하고 컴퓨팅이 이뤄지는 모든 곳에서 이를 수행하는 것은 우리 플랫폼뿐”이라며 “엔비디아 제품은 특정한 AI 구조나 기능을 위해 설계된 주ASIC보다 뛰어난 성능과 다용성과 호환성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구글뿐만 아니라 아마존도 AI칩 경쟁에 가세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일 전력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린 차세대 AI칩 ‘트레이니엄3’를 출시했다. 이 칩은 전작 트레이니엄2 대비 컴퓨팅 성능을 4배 이상 높이고 에너지 소비량은 약 40% 낮췄다. AWS는 “엔비디아 GPU 기반 대비 AI 모델 훈련·운영 비용을 최대 50%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WS는 다음 세대 제품인 ‘트레이니엄4’ 개발에도 착수한 상태다. 최근 공개한 트레이니엄3보다 3배 이상 성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챗봇 전쟁: 구글 ‘제미나이’ vs 오픈AI ‘챗GPT’
구글은 AI챗봇에서 오픈AI의 챗GPT를 위협하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제미나이 3.0 출시 뒤 사내 메모를 통해 “이제 우리가 (구글을) 쫓아가는 입장”이라 밝히더니, 2일에는 급기야 사내 위기 경보 ‘코드 레드’를 발령했다. 챗GPT 품질 개선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기존 추진 중이던 광고를 비롯해 건강·쇼핑 AI 에이전트, 개인비서 서비스 ‘펄스’ 등 프로젝트들은 연기됐다.
제미나이 3.0은 챗GPT를 능가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미나이 3.0은 AI챗봇 평가사이트 ‘LM아레나’ AI 성능 평가에서 1501점(LM아레나 리더보드 기준)으로 1위를 차지했다. 또 가장 어려운 AI 성능평가로 불리는 ‘인류 마지막 시험(HLE)’에서도 최고점수(37.5%)를 받으며 오픈AI의 GPT 5 프로(31.6%)를 앞섰다.
특히 업계는 제미나이가 구글 자체 AI칩 ‘TPU v7’을 활용해 학습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제미나이가 구글과 미국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업체) 브로드컴과 함께 만든 TPU를 통해 챗GPT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는 점은 더이상 엔비디아의 GPU 없이도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AI를 만들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을 시사한다.
세일즈포스 마크 베니오프 CEO는 구글의 ‘제미나이 3.0’에 대해 “추론, 속도, 이미지, 비디오 등 모든 것이 더 선명하고 빨라졌다. 이는 정말 놀라운 발전이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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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전쟁: AI거품 우려에도 앞다퉈 채권 발행
AI 주도권 경쟁은 미국의 대형 정보기술 기업(빅테크)들의 ‘AI 빚투’로 이어지고 있다. AI 인프라 구축이 목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인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은 올해까지 약 1000억달러(약 147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해당 기업이 지난해 채권 시장에서 모금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다.
오라클은 9월 180억달러(약 26조5000억원)를 채권 시장에서 조달했다. 메타 역시 지난달 300억달러(약 44조1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알파벳은 이달 초 250억달러(약 36조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미국과 유럽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아마존 역시 지난달 17일 회사채 150억달러(약 22조원)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빅테크가 아닌 기업들도 AI 빚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개발업체인 테라울트와 사이퍼 마이닝은 70억달러 넘는 투기등급 채권을 판매했다.
미국 투자사 캔터 피츠제럴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아마존, 오라클 4곳의 내년 AI 투자를 합한 금액이 내년 말 기준 5200억달러(약 76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은 향후 몇 년간 AI 투자를 위해 고등급 회사채 발행액이 1조5000억달러(약 2200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크본드와 레버리지론 시장에도 AI 관련 부채가 대거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투자 대비 수익이다. 올해 가장 공격적인 AI 인프라 투자에 나섰던 오라클의 경우 경고음이 켜졌다. 모건스탠리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부채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오라클의 신용부도스와프(CDS) 비용이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오라클 5년물 CDS 프리미엄은 연 1.25% 수준까지 상승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수준(1.98%)에 근접했다.
모건스탠리의 크레딧 애널리스트 린지 타일러와 데이비드 함버거는 보고서에서 “오라클이 펀딩 갭(자금 공백), 차입 증가, 기술 구식화 등 복합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며 “스프레드가 단기적으로 1.5%를 넘어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주도권 치열할수록…“최종 승자는 삼성, SK”
이런 가운데 AI칩 경쟁의 최종 승자는 ‘메모리 강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분석도 나온다. AI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글 TPU 1개당 HBM은 6~8개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HBM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가 TPU 시장에서도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은행 UBS 분석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구글, 브로드컴, AWS 등 ASIC 고객을 대상으로 공급 우위를 점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리서치는 최근 SK하이닉스가 구글과 브로드컴에 HBM3E(5세대)를 공급하는 ‘1순위 공급자’(No.1 supplier)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구글과 오랜 협력 관계를 토대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나 HBM에서 추가 수주가 점쳐진다. 일각에선 초기 HBM 물량에서는 SK하이닉스가 앞섰지만, 전체 생산 역량을 고려하면 연간 공급 물량은 삼성전자가 앞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 기준 구글·브로드컴에 더 많은 HBM 물량을 공급 중이며, 내년에도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브로드컴에 재설계한 HBM3E 샘플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