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관리 성공 여부 관건, 달러 시험대에
“신하는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 나라를 이롭게 하지 않으며, 군주는 나라를 해치면서 신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 이익과 해의 실제는 지혜로운 자들이 모두 아는 바이다(臣不殺其身以利君 君不殺其國以利臣. 利害之實 智者之所共知也” – 한비자(韓非子) 內儲說(내저설)
군주이건 신하이건 결국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인간 본성을 꿰뚫은 한비의 명언이다. 한비는 무엇이 이익이고 해인지 간파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비자도 앞선 성인들의 가르침에서 이를 깨닳았다고 볼 수 있다.
“군자는 남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되(和) 무턱대고 뇌동(同)하지 않으며, 소인은 뇌동하되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한다(和而不同)” – 논어(論語) 자로(子路)
“도를 따르지, 임금을 따르지 않는다(從道不從君)” – 순자(荀子) 신도(臣道)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 만큼은 그대로일 듯도 하다.
케빈 하셋(Kevin Hassett)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될 전망이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기대보다 ‘공포’에 가깝다. 트럼프 행정부의 ‘꼭두각시(Stooge)’가 되어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무리한 기준금리 인하로 인플레이션 위험을 재점화할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돼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에 대한 통제권이 미국 정치에 귀속되는 데 대한 공포가 크다. 달러가 ‘신뢰할 수 없는 통화’가 된다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
하셋의 지명 가능성에 1970년대 연준 의장 아서 번스(Arthur Burns)의 망령이 소환되고 있다.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무리하게(?) 기준금리를 인하해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인플레이션 위기를 초래했다는 오해를 받는 인물이다.
실제 닉슨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번스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그렇다고 번스 의장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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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2월부터 1978년 1월까지 연준 의장을 역임했던 아서 번스(Arthur Burns) 전 의장은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무리하게(?) 기준금리를 인하해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인플레이션 위기를 초래했다는 오해를 받는 인물이다. |
1969년 말부터 1970년대 초 미국은 짧은 경기 침체를 겪는다. 물가는 오르는 데 고용이 악화됐다. 1970년 취임한 번스 의장은 1971년 규제로 임금·가격을 통제(incomes policy)하고, 통화정책으로 고용을 회복시키려는 접근을 했다. 번즈는 임금·가격 통제로 물가와 인플레이션 기대를 묶어두고 그동안 통화 정책으로 실업을 줄이고 완전 고용을 달성하려고 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고 있었다. 전쟁만큼 강력한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은 없다. 달러를 새로 찍어내는(통화량 증가) 방식으로라도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1971년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한 닉슨 독트린도 이를 위한 극약 처방이었다. 번즈는 경기 순환에 정통한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았지만 전쟁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973년 중동 전쟁으로 1차 석유 파동이 발생하면서 그의 ‘불가피한 선택’은 ‘그레이트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이라는 재앙이 됐다. 석유 파동으로 경기가 급랭하면서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래이션(Stagflation)에 빠진다. 1974년 물가는 12% 이상 치솟는다.
석유 파동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번즈의 연착륙 계획이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 스태그플래이션에도 번즈는 연준 의장 연임에 성공했고 1978년 퇴임했다. 이후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서독 대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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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유력한 케빈 하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감세와 저금리가 기업 투자를 촉진해 성장을 이끌면, 인플레이션도 자연스럽게 잡힐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
하셋은 미국 경제학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오랜 기간 주요 언론사에 칼럼을 쓰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기업 세제에 전문성이 높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규모 감세 법안을 만든 것도 하셋이다. 그의 이름이 가장 크게 알려진 저서는 1999년 보수 경제 논객들과 함께 저술한 ‘다우 36,000’이다.
‘다가오는 상승장에서의 수익전략(The New Strategy for Profiting From the Coming Rise in the Stock Market)’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는 다우지수 3만6000을 예상했다. 당시 다우지수는 약 1만이었다. 1991년을 2600선으로 출발한 다우지수는 1995년 5000선을 넘어서고, 1999년 3월 1만 선을 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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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 하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1999년 출간한 책 ‘다우 36000’은 임박한 닷컴 버블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시장의 과열을 ‘구조적 성장’으로 오판했다. |
하셋은 주식이 채권보다 낫다며 지속적인 상승을 예상했지만 그 때가 ‘닷컴 버블’의 정점이었다. 2000년부터 거품이 꺼지면서 다우는 3년 연속 하락했고 2002년에는 한때 7000선까지 위협받았다. 하셋을 비롯한 저자들은 시장의 조롱을 피할 수 없었다.
다우지수가 3만6000선에 도달한 것은 책이 발간된 지 무려 22년 만인 2021년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의 실패 자체가 아니라, 그가 시장의 과열을 ‘구조적 성장’으로 오판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이 하셋을 우려하는 이유도 기업과 주식 중심의 쏠림 때문이다. 그는 감세와 저금리가 기업 투자를 촉진해 성장을 이끌면, 인플레이션도 자연스럽게 잡힐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금리를 내려 빚 더미(국내총생산 대비 120%)인 연방정부의 이자 부담을 줄여야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는 비판에도 하셋 스스로는 학문적 확신을 가지고 연준을 이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셋 이전에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케빈 워시(Kevin M. Warsh) 전 연준 이사의 경우 ‘매파적 성향’(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함)이 짙은 인물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최연소 연준 이사(Governor)에 지명될 정도의 실력을 지녔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양적완화(QE)를 반대하며 공직을 떠났다. 연준 제도에 비판적인 부분은 트럼프와 통하지만 기준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릴 가능성은 낮은 인물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스콧 베센트(Scott C. Bessent) 재무장관이다. 그는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최초의 ‘금융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고사했다. 베센트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가장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된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도 대부분 그를 통해 수행됐다. 굳이 연준 의장이 돼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워시가 탈락하고, 베센트가 고사한 점을 고려할 때 하셋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친기업적인 트럼프 정부의 행보에 적극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록할까. 닉슨의 재선만 돕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제2의 번스’가 될지, 아니면 성장을 주도한 혁신가가 될지. 분명한 건, 달러의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은 1970년보다 훨씬 혹독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트럼프와 신임 연준의장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공자님 말씀을 믿어보자.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논어 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