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눈먼돈’ 산안비, 하도급사까지 계상 의무화…노사합의 사용도 허용

원·하청 안전 사각지대 해소 초점…노동부, 계상·사용 기준 매년 공표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여드레째인 11월 13일 오후 발전소 현장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야간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건설현장에서 ‘눈먼돈’ 논란을 빚어온 산업안전보건관리비(산안비) 사용 기준이 전면 손질된다. 그간 원도급사에만 부과됐던 산안비 계상 의무가 하도급사까지 확대되고, 노사 합의에 따라 보다 유연한 사용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은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산안비는 건설현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의무적으로 계상·사용해야 하는 비용이지만, 그동안 하도급 계약 단계에서는 계상 의무가 없어 영세 하청 현장에서 산재 예방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건설공사 도급인이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산안비를 반드시 계상해야 한다. 원·하청 구조 속에서 안전관리 책임이 아래로 전가되던 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안 위원장은 “산안비가 부족하거나 아예 미계상되는 하청 현장에서도 실질적인 산재 예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안비 사용의 경직성도 완화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근로자 건강관리실, 안전 표지판 설치 등 일부 안전 관련 항목조차도 세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산안비 집행이 불가능했다.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또는 노사협의체가 유해·위험요인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령이 정한 범위 안에서 산안비 사용을 허용하도록 했다. 형식적인 기준이 아니라 노사 합의를 중심으로 실제 위험 요인을 개선할 수 있도록 문을 연 것이다.

그동안 불규칙하게 개정돼 현장 혼선을 키웠던 산안비 계상·사용 기준도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부는 매년 산안비 사용 실태를 조사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심의를 거쳐 관련 기준을 정기적으로 공표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사업주에게 보완 조치도 요청할 수 있다.

또 건설공사 발주자와 공사를 총괄·관리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의 산안비를 수급인에게 우선 지급하도록 해, 원도급 단계에서 자금이 묶이는 문제도 개선될 전망이다.

안 위원장은 “정부가 올해 산안비 요율을 인상한 만큼, 그 재원이 건설사 호주머니로 들어갈 게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실질적으로 쓰이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5년간 산안비 집행 규정을 위반한 2543개 사업장 가운데 701곳(27.5%)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산안비 집행 여부가 현장의 산재 예방 수준과 직결된다는 점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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