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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 6월 비무장지대 판문점 북측 국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미국과 중국이 최근 발표한 핵심 안보 문서에서 나란히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삭제하면서 그 배경과 향후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북한 비핵화 협상에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만큼, 이번 생략이 기존 정책 기조의 후퇴인지, 아니면 외교적 공간을 남기기 위한 전략적 조정인지 해석이 엇갈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5일(현지시간) 내놓은 국가안보전략(NSS)은 전임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전혀 담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 자체가 아예 언급되지 않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의 2022년 NSS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목표로 명시했고, 트럼프 1기 행정부(2017년) 역시 “한반도 비핵화를 강제할 옵션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이번 문서에서는 ‘핵 비확산(non-proliferation)’이라는 표현 자체가 빠졌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지만, 미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식 목표로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지난달 13일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돼 있다. 관측통들은 “NSS의 생략은 향후 북미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외교적 유연성 차원”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중국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7일 발표한 군비통제·군축·비확산 백서에서 기존에 포함돼 왔던 ‘한반도 비핵화 지지’ 문구를 삭제했다. 2005년 백서에 담겼던 “한반도 등 지역의 비핵지대 설립을 지지한다”는 표현이 사라진 것이다.
백서는 대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공정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며, “관련 당사국들이 위협과 압박을 중단하고 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으로 대체했다.
중국의 비핵화 언급 축소는 최근 들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도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빠졌는데, 이는 중국 측 반대 때문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2019년 다섯 차례 회담할 때는 비핵화 관련 문구가 빠짐없이 포함됐지만, 두 정상이 지난 9월 만났을 때는 관련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
국제안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중국의 전략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보다는, 북한의 핵무장 상태를 일정 수준 ‘관리 가능한 카드’로 보고 미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 불용 원칙을 사실상 조정하는 셈이어서 향후 6자 및 북핵 외교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미국의 차기 국방전략(NDS)에서는 북한의 핵 능력과 위협이 여전히 중요한 현안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NSS가 방향성을 제시하는 문서라면, NDS는 구체적 군사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만큼 ‘북핵’ 이슈가 완전히 비켜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미중이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 언급을 줄인 것은 우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향후 북미·북중 외교와 동북아 안보질서 재편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