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후 교통망 독점 부작용 걱정 커져
노사갈등 땐 철도 물류마비 가능성 제기
일부 “사회적 논의 없는 성급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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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서역 SRT 승강장에 정차돼 있는 열차(왼쪽)와 서울역에 내걸린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현수막. [연합] |
정부가 내년까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에스알(SR) 통합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전국철도노동조합이 ‘무기한 파업’을 예고했다가 유보하면서 ‘독점 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나의 공기업이 전국 교통망을 독점하게 되면, 노사 갈등 시 전체 철도 물류가 마비될 수 있다는 지적도 힘을 받고 있다. 잦은 안전사고와 철도 공기업의 부채 등 관리 체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물리적 통합으로 규모를 키우는 게 부실을 키울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좌석 증가로 고객 편의 증대? 파업 시 ‘전국 철도 마비’=앞서 정부는 지난 8일 내년 말까지 코레일과 SR의 기관통합을 마치겠다며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발표했다. SR은 2013년 12월 코레일로부터 분리됐다. 계획대로 통합이 이뤄진다면 양사가 다시 합쳐지는 건 13년 만이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과 SR 통합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좌석 부족’ 문제를 꼽고 있다. 고객 편의를 돕기 위한 통합이라는 설명이다. 국토부는 통합으로 고속철도 운행 횟수를 늘리고 서울역과 수서역을 자유롭게 운행해 수요도 분산하는 등 더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국토부가 2021년 발주한 연구용역에선 통합 시 중복비용을 연간 최대 406억원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내년 3월부터 KTX·SRT 교차 운행이 시작된다. 서울역에는 SRT가, 수서역에는 KTX가 투입된다. 수서역에 투입 예정인 KTX-1(20량·955석)은 현행 SRT(10량·410석)보다 좌석 공급력이 2배 이상 높아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수서역발 좌석난 해소가 기대된다.
코레일 분석에 따르면 교차 운행과 열차 회전율 개선 등을 통해 주말 기준 하루 고속철도 좌석 1만6690석, 약 6.5%의 확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통합에 반대하는 SR측의 의견은 다르다. 시범운영을 통해 실제 효과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규 차량 투입과 병복구간(평택~오송) 복복선화 등 좌석 부족을 완화할 방안이 이미 추진 중이라고도 꼬집는다.
실제 좌석이 늘어나 편의가 증대될진 몰라도, 독점 체계로 인한 서비스질 저하 등의 문제는 득실을 따져봐야 할 것으로 꼽힌다. 경쟁체제를 도입해 고속철도의 서비스 질이 향상됐는데, 통합될 시 경쟁에 따른 발전이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SR이 운영하는 수서고속철도(SRT)는 코레일 고속철도(KTX)보다 요금이 10% 더 저렴하다. 지난 2016년 SRT가 개통되고 나서 KTX는 마일리지 제도를 부활시키는 등 고객 편의가 더 확대된 게 사실이다. 정부는 2013년 ‘철도 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하며 “서울·용산과 수서발 KTX간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장소에서 철도를 이용하도록 편익을 제고할 것”이라고 기대 효과를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무기한 파업’ 예고와 유보 결정에서 살펴볼 수 있듯, 한 개의 회사로 통합된 후 파업 등으로 전국 물류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는 직원들에게 “정부가 ‘성과급 정상화’ 안건과 관련해 제반 절차를 거쳐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통한 문제 해결 입장을 밝혔다”며 “이에 잠정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통합 후 또다시 성과급 등으로 노사 갈등을 빚게 되면, 전국 철도 물류 운영을 쥐고 있는 철도 노조의 목소리에 끌려갈 수 밖에 없다.
현재 코레일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철도노조가, SR은 상급단체 없는 노동조합이 있다. 현재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SRT는 그대로 운영되지만, 통합 이후에는 모든 고속철도가 멈출 수 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독점일 때 파업을 해버리면 KTX가 올스톱 돼 버리기 때문에 굉장히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과연 통합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이 경쟁체제일 때보다 큰지 더 자세히 분석해 봐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사실 이번 파업 유보는 예고됐던 사안”이라며 “코레일 노조 뜻대로 통합을 발표했는데 파업하면 경쟁체제가 더 낫다는 명분을 제공해 주는 꼴이기 때문”이라고 꼬했다.
▶“정부가 기관 통합 내년 말로 못박아…사실상 압박”=10년 전 경쟁체제 도입의 이유였던 막대한 부채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경쟁체제 도입 당시 철도 건설 부채는 철도 운영의 비효율로 인해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토부가 발표한 ‘코레일-SR의 철도 공기업 경쟁체제에 대한 거버넌스 분과위원회 평가결과 발표’에 따르면 코레일은 KTX 운용수입의 34%를 철도 건설자금 부채를 상환에 사용하고, SR은 그보다 높은 50%를 부채 상환에 쓰고 있다. 철도의 경우 건설하며 발생한 부채를 운용수입으로 상환하는 구조인데, 양사가 동시에 운용수입을 빚 갚는데 쓰며 고속철도 건설자금 부채가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됐다.
부채와 더불어 기존에도 잦았던 안전사고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통합체제로 좌석수가 늘어나면 관리상 부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코레일 분석에 따르면 KTX, SRT 통합으로 서울역-수서역 교차 운행 및 회전율 증대를 통해 주말 하루 기준 전국 고속철도 좌석수가 1만6690석 증가할 전망이다.
강 교수는 “통합 이후 운영 측면에서 좌석수가 늘어나며 배차간격과 같은 일정이 타이트하게 진행돼 병목구간이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고 가능성도 늘어날 수 있다”며 “통합 효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일정으로 운영되게 된다면 안전관리 부실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통합으로 늘어나는 좌석수는 안전성을 고려한 수치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합 운영으로 열차 주행 거래가 늘어나게 되면 열차의 안전성 검증이 필요한데 약 1만6000석은 이론적으로 안전성이 100% 담보될 때 검토된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KTX와 SRT의 운영 통합 등을 선제적으로 진행하되, 기관 통합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른바 ‘출근 지옥’으로 불리는 수서역에 KTX를 배차하는 등 서비스 통합으로 국민의 불편은 해소하되, 완전 통합에 대한 부작용은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코레일과 SR통합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급작스럽게 결론을 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에게 미칠 영향이 큰 데 정부가 성급히 로드맵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실제 코레일과 SR 통합 관련 공식 간담회는 코레일과 SR, 국토부, 관련 전문가만 참여한 가운데 3차례 개최됐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지난 28일에 열린 3차 간담회까지만 해도 기관 통합 시점에 대해 SR 측은 2028년 말, 국토부는 2027년 말을 언급했었다”며 “운영 통합을 넘어 기관 통합까지 빠르게 진행하기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가 있다는 이유였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운임, 마일리지, 회원제 등 서비스 조정 방안 및 안전체계 일원화 등에 대해서는 별도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강 교수는 “기관 통합을 전제로 운영을 해봤는데 효과적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지는 또 별개의 문제”라며 “경제적 이익이나 소비자 만족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화폐가치로 환산해서 따져볼 거냐 하는 부분들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충분히 검토해 결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내년 연말로 기관통합을 못 박았다는 건 굉장한 압박”이라고 분석했다. 홍승희·신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