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로 사망사고 줄이려던 중대재해법…형량은 형사합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세상&]

시행 4년 앞둔 중대재해법…실형률 8.57% 불과
기업, 재발 방지 아닌 ‘유족 합의’ 감형 몰두 지적
“안전 시스템 개선으로 양형 중심축 바뀌어야”


최환 부산고법 판사(가운데)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가 지난 15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형사 처벌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주된 해결책이 돼서는 안 된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나왔다. 곧 시행 4년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양형 심리 초점이 재발방지 조치 이행 쪽에 더욱 맞춰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양형위 운영지원단장을 지내기도 했던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을 주제로 열린 양형연구회 15차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나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했다.

범 부장판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중대재해 범죄 혐의로 기소된 사건 중 65건에 유죄판결이 선고됐는데, 피고인 수 기준으로는 총 138건의 양형사례가 있다. 이 중 피고인이 자연인인 경우는 70건, 법인인 경우는 68건으로 자연인에 대한 사건에서 실형률은 8.57%(70건 중 6건)에 불과했다. 집행유예 비율은 87.14%(70건 중 61건)이었다.

범 부장판사는 “인명피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한 사건임에도 실형률이 8.57%로 나타난 이유는 ‘유족(또는 피해자)과의 형사합의’를 통해 유족이 법원에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사정이 주요 양형요소로 참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피고인의 감형에 유리한 ‘유족과의 합의’가 양형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내 의사결정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기 마련이고, 그 위험이나 비용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영책임자와 기업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유족과 형사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방안이 형사 처벌에 집중되면, 기업이 재발 방지책 마련보다 유족과의 합의 등을 통한 감형에 몰두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범 부장판사는 “중대재해로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되는 유족의 입장에선 이미 기업에 대해 산업재해 발생을 원인으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경제적 이유로 형사합의에 응할 유인이 커지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유족에게 지급하는 형사합의금 등 사후적 비용이 기업이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에 충실하고도 철저하게 이행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압도적으로 크지 않으면 기업은 여전히 안전에 투자하기보다는 사고처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범 부장판사는 ‘유족과의 합의’는 충실한 재발 방지 조치 이행이 병행될 때 진정한 피해 회복으로 기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이 추구하는 재해예방이라는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재발방지 조치라는 양형요소가 기계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양형심리의 초점이 재발방지 조치의 충실한 이행을 검증하는 데에 더 맞춰져야 한다”며 “유족과의 합의는 충실한 재발방지 조치와 병행돼야 결과반가치와 행위반가치를 감쇄하는 진정한 의미의 피해회복에 관한 양형인자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범 부장판사는 아울러 “중대재해법은 산재사망 문제를 ‘사고’나 ‘재해’ 프레임에서 ‘살인’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인데, 이러한 프레임 전환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사법화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 정의에 매달리게 한다는 부작용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형사처벌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주된 해결책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중첩적으로 부담할 수 있어 정부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그는 “특히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노동현장에 대한 정부 지원이나 감독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의무를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아 재해 발생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오롯이 부담시키기 가혹한 면이 있어 이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감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 부장판사의 발언에 공감을 표했다. 권 교수는 “유족과의 합의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 개선, 위험성 평가 이력, 외부 전문가의 검증 등 재발 방지와 안전 시스템 개선으로 양형 중심축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지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역시 “결국 중대재해법 위반범죄의 양형인자로서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 포함)’만을 두는 경우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유족과의 합의에 지나치게 큰 효과를 부여하기보다는 재발방지조치의 이행과 병행돼야 한다는 발표자의 견해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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