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환율이 핵심 변수…은행권, 건전성·유동성 관리에 사활[머니뭐니]

원/달러 환율 장중 1480원 넘어
“작년 환율 급등 충격 상황 재현”
환율 상승 땐 RWA 확대·CET1 하락
수익성·유동성서도 부정 영향 더 커

은행권이 1500원에 바짝 다가선 원/달러 환율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율 상승이 자산건전성과 유동성 등 경영 지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놓여 있다. [뉴시스]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 수준으로 오르자 은행권이 사실상 ‘비상 점검 모드’에 돌입했다. 내년에는 환율이 점진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게 주요 은행의 공통된 전망이지만 1500원에 바짝 다가선 고환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짙어 보인다. 이에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는 과정에서도 환율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17일 장중 1482.3원까지 뛰었다. 지난 4월 9일(장중 1487.6원)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종가도 1480원 턱밑인 1479.8원을 기록하며 4월 9일(1484.1원) 이후 최고치를 다시 썼다.

이날은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 속에 전날보다 소폭 내린 1477.3원에 거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1470원 후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주간거래 종가가 1424.4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반여 만에 55원 가까이 오른 셈이다.

환율이 연일 고공행진하면서 은행권은 자본건전성과 유동성, 수익성 등 전 분야에서 ‘환율 스트레스’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작년 말에도 환율이 급격히 올라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떨어지는 등 충격이 컸는데 그 상황이 재현되는 형국”이라며 “올 연말에는 처음부터 고환율을 전제로 경영계획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권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부분은 자본건전성이다. 환율이 오르면 외화 표시 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며 위험가중자산(RWA)이 불어난다. 자산이 실제로 늘지 않더라도 분모(RWA)가 커지면서 핵심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떨어지는 것이다.

통상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 1~3bp(1bp=0.0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환율로만 최근 두 달여간 최대 0.18%포인트의 하향 압력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수익성이나 유동성 면에서도 환율은 부정적 영향이 크다. 물론 고환율은 외환·파생상품 부문에는 기회다. 수출입 기업의 환 헤지 수요가 늘면서 파생상품 거래가 확대되는 등 관련 수수료 이익이 증가한다. 달러예금이 불어나며 여유자금이 추가로 확보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전체 그림으로 보면 이익보다 비용·손실이 크고 늘어난 달러 자산에 높은 환율까지 반영해 자본을 더 쌓아야 하는 부담도 는다.

특히 환율이 빠르게 오를 때는 외환·파생상품 거래나 달러예금 확대 같은 ‘보이는 이익’보다 평가손실과 조달비용, 마진 압박, 각종 규제지표 방어 등에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크게 누적될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진단이다.

예컨대 달러예금이 늘면 유동성 위기 시 빠져나갈 수 있는 잠재적 현금 유출액이 증가하는데 환율까지 오르는 상황이라면 원화 환산 규모가 커서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은행으로서는 관리해야 할 외화 유동성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향후 대출·사업 부문에 있어서도 환율은 부담 요소다. 수출입 기업 등의 무역금융 수요가 증가할 여지는 있지만 당장 공급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개별 기업의 실적과 재무구조가 약해지면 기업대출 건전성 리스크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이는 연체율 증가와 부실여신 확대, 대손충당금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올해 9월 말 기준 0.61%로 집계됐다. 분기 말 연체채권 정리 효과로 전월(0.73%)보다 줄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0.09%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최근 고환율 흐름은 금융 부문 전반에 비우호적”이라며 “외화자산을 줄여 환율민감도를 낮추거나 환율 영향을 많이 받는 파생상품 관리를 강화하는 등 은행마다 리스크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 은행 경영에 있어 성장률이나 금리, 경기 흐름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환율 변수가 훨씬 전면에 나와 있다”면서 “환율 상단을 충분히 열어두고 건전성과 유동성을 방어할 수 있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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