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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사용될 것이다. 여기에는 ‘올 한 해가 다사다난했지만 마무리를 잘하자’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런데 한국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아직 ‘마무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산업 정책이 변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부각됐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2022년 제정된 CHIPS and Science Act(이하 CHIPS 법)의 폐지를 언급했다. 이는 이전부터 주장해 온 보조금 중심 정책이 재정 낭비라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국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책기조 변화 가능성만으로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CHIPS 법을 전제로 대미 투자가 진행된 상황에서 보조금 집행이 불투명해지면, 기업의 재무계획 전반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관세라는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것이 지난 4월이다. 상호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와 의약품 등은 추가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8월 중순에는 반도체에 대해 200~300% 관세 부과가 가능하며, 곧 발표하겠다고 언급해 한국 반도체 기업에 추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2025년 말까지 반도체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발언·검토가 실제 부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한·미 협의 과정에서 반도체가 언급됐고,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없었으니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이렇게 어려운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AI 투자 확산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이 급상승했다. 우선 AI 시스템에 사용되는 고가의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HBM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한국 기업의 매출도 상승곡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논리에 따라 고가의 HBM 생산을 늘리면서 범용 반도체인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이 줄어들었다. 생산이 줄고 공급이 감소하면서 이들의 단가도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즉, 고가의 HBM 판매 호조에 이어 기존 제품의 단가가 상승하니 한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이 기록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신산업의 등장으로 인해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장 포화상태에 다다르게 된다는 사실이 이미 반도체산업의 역사에서 확인됐다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 불확실성이 현재 진행형이므로 이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통상과 산업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업은 HBM 등 고부가 제품에 대한 선도적 지위 유지와 함께 범용 제품과 차세대 제품 전환에 대한 중장기 포트폴리오 전략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 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