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달러·AI·에너지전환 기대 中자금 몰려
금과 은에 이어 구리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톤당 1만4500달러를 돌파했다. 중국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세가 몰린데다 에너지 전환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중장기 수요 기대, 달러 약세가 겹치며 산업금속 전반으로 투기적 자금이 유입되는 양상이다. 다만 실물 수요를 앞선 급등이라는 경고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리 가격은 중국 투자자들이 거래를 주도하는 시간대에 급등하며 장중 최대 11% 상승, 톤당 1만4500달러를 처음 넘어섰다. 이후 차익 실현 매물로 변동성이 커졌지만, 12월 초 이후 누적 상승률은 약 21%에 달한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는 장중 변동폭이 2009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중국 자금의 유입이 급등의 방아쇠가 됐다. 거래가 집중되는 새벽 시간대에 LME 구리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5% 이상 뛰었고, 상하이선물거래소(SHFE) 선물은 개장 직후 톤당 11만4000위안(약 1만6400달러)까지 치솟았다. 구리는 SHFE에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일일 거래량을 기록했다.
거시 환경도 가격을 밀어올렸다. 미국 달러 지표가 4년여 만의 저점으로 내려앉으면서 원자재가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각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신호를 보낸 점도 달러 매도를 자극했다. LME의 6대 비철금속 지수(LMEX)는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수요 기대는 여전하다. 구리는 전기차, 전력망, 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전환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이 때문에 실물 경제의 선행 지표로 통하며 이른바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로 불린다.
트라피구라 그룹의 전 트레이더인 마크 톰슨은 “공급 차질이 한 번만 발생해도 구리는 2만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판뮤어 리베룸의 톰 프라이스는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자본이 실물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과열 신호도 뚜렷하다. 중국의 실물 수요는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LME의 콘탱고 확대는 공급이 상대적으로 여유롭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에 SHFE는 증거금 요건을 인상하고 주석·은 시장에서 일부 고객의 거래를 제한하는 등 진정 조치에 나섰다. 거래소는 비정상 거래 위반 사례를 공개하며 투자자들에게 위험 인식을 높여 달라고 촉구했다. 서지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