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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이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씨어터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프리미어 그래미 어워즈 사전 행사에서 최우수 시각매체를 위한 작곡상을 수상하자, 제작진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벌어졌다. K-팝의 ‘주류’ 입성이다. 방탄소년단을 시작으로 꾸준히 두드려왔던 그래미의 장벽이 깨졌다. 비록 K-팝의 상징인 방탄소년단(BTS)도, 블랙핑크도 아니었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수상은 K-팝의 지평을 넓힌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K-팝 IP(지식재산권)의 확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만 최초의 ‘제너럴 필즈’ 탄생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메인 테마곡 ‘골든(Golden)’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상을 받았다. 이 부문은 노래를 만든 송라이터에게 주는 상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는 단순 팬덤 소비를 넘어, 미국 내 일반 대중 사이에서 ‘올해의 앤섬(Anthem, 찬가)’으로 불릴 만큼 광범위한 스트리밍 수치를 기록했다”고 평가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본격적인 시상식 시즌을 맞으며 엄청난 추동 엔진을 달고 그래미까지 질주했다. 앞서 골든 글로브에서도 주제가상을 받아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오스카에도 후보로 입성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 굴지의 레이블인 리퍼블릭 레코드에서 유통되나, 장르는 ‘K-팝’으로 분류됐으며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인 테디 사단과 이 노래를 부른 이재가 작곡에도 함께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골든’이 그래미 그라모폰을 들어올린 것에 대해 “K-팝을 소재로 한 콘텐츠의 힘이 발휘된 특수 사례”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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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오프닝 무대를 꾸민 로제와 브루노 마스 [EPA/연합] |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의 문법은 독특하다. 이 곡은 K-팝 특유의 에너제틱한 비트와 팝 음악 시장이 선호하는 멜로디를 결합했다. 여기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자주 쓰는 일종의 ‘아이 원트(I Want)’ 송(주인공의 열망을 담은 노래) 형식을 팝 문법에 녹여내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모나쉬 렌즈 평론가는 타임지를 통해 “‘골든’은 불안과 압박 속에 살아가는 현대 청소년들에게 ‘나는 여전히 빛난다’(I am still golden)는 가사를 통해 강력한 위로를 안긴 회복 탄력성이 돋보이는 곡”이라고 했다.
‘골든’의 수상은 미국 순위 차트 빌보드에서 보여준 전무후무한 기록을 통해서도 점쳐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OST까지 동반 인기를 견인했다. 극 중 악령을 퇴치하는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K-팝 장르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를 석권하는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차트에 머물고 있다. 빌보드에선 특히 OST 수록곡 4곡이 동시에 ‘핫 100’ 톱 10에 진입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90년대 팝 전성기 시절의 OST 열풍을 재현한 것이자, 애니메이션 장르로서는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 어워즈를 앞두고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입성 등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기세가 좋았다”며 “아카데미 레이스를 할 때도 그 이전 시상식의 수상 결과가 중요한 것처럼 ‘골든’의 막판 탄력과 차트에서 맹위를 떨치는 모습은 팬덤의 힘이 아닌 실질적 인기이자 곡으로서도 완성도가 있었기에 이번 수상은 합당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곡의 음악적 성취는 K-팝 사단이 거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부여된다. 더블랙레이블의 테디(Teddy)와 24 등 블랙핑크의 히트곡을 만든 제작진이 대거 참여,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이 아닌 하나의 팝 음악으로 존재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은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의 인기, 가창 스타일과 멤버 구성, 메인 보컬 1명이 곡을 끌고 가는 스타일 등 기존의 K-팝 같지 않은 특성을 가진 아메리칸 팝 스타일의 곡이었다”며 “이런 점에서 미국 대중이 진입장벽 없이 즐길 수 있었고, K-팝 장르에 대한 문턱을 낮춘 사례”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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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난리(Gnarly)’ 무대를 선보인 캣츠아이(KATSEYE) [AP/연합] |
‘골든’의 후보 지명과 수상은 K-팝이라는 장르가 애니메이션과 같은 다른 미디어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순수 음악적 지표보다는 ‘K-팝 IP’의 대중적인 영향력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는 ‘제너럴 필즈’인 ‘송 오브 더 이어’(올해의 노래)와 ‘레코드 오브 더 이어’(올해의 레코드)를 포함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까지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캣츠아이도 데뷔 1년 만에 ‘베스트 뉴 아티스트’(신인상)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베스트 뮤지컬 시어터 앨범’ 후보였다.
다양한 후보들이 모두 트로피를 안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그래미 어워즈를 통해 업계에선 K-팝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본다. 굴지의 시상식인 만큼 그래미 어워즈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상징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올해 후보에 오른 K-팝의 공통된 특징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태어난 곡이자 아티스트(캣츠아이)라는 데에 있다. 유통,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미국 굴지의 음반사, 레이블을 통해 본토를 공략했다. 로제는 분명 K-팝 대표 아티스트이나, 미국 굴지의 레이블 애틀랜틱 레코드를 통해 ‘아파트’를 유통했고, 캣츠아이는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는 리퍼블릭 레코드를 통해 유통했다.
일종의 K-팝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그래미와 주류 팝 음악 시장을 두드리며 오늘의 성과를 낸 것이다. 실제로 로제의 ‘아파트’는 애틀랜틱 레코드와 함께 미국 현지를 공략하며, 빌보드 차트에서도 K-팝 최초의 성취를 꾸준히 달성했다. K-팝 여성 솔로 최초로 빌보드 ‘핫 100’ 3위에 올랐고, 이 차트에 무려 35주간 입성했다. K-팝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 기록’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매체로 불리는 라디오 장벽을 무너뜨린 ‘최초의 곡’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 곡은 K-팝 아티스트 최초로 팝 에어플레이 1위에 올랐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아파트’와 ‘골든’이 본상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라며 “‘아파트’의 경우 한국인이 아니면 그런 아이디어를 절대 낼 수 없는 노래다. 이제는 우리가 알리고 싶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주목할 정도로 K-팝의 영향력이나 인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캣츠아이의 그래미 후보 입성은 ‘K-팝 시스템’이 해외 굴지의 레이블과 만났을 때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시스템의 완전한 안착에 신중한 입장이지만, 그래미가 ‘K-팝 시스템’을 거친 그룹이 주요 후보로 지명했다는 점에 있어선 산업적 가치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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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오프닝 무대를 꾸민 로제와 브루노 마스 [EPA/연합] |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현지화된 전략으로서 K-팝이 어떤 식으로 진화해 나가는지를 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K-팝을 만들고 수출하는 것을 고민하던 때를 넘어 K-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해외의 시선으로 만들었을 때 어떤 성과가 나오는 첫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시스템을 통해 K-팝의 지평이 넓어지고 지속가능한 확장과 성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면서도 “우리가 지금 어떤 역할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희윤 평론가는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며 좋은 음악 활동을 해온 아티스트도 데뷔 10여년 만에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사례도 있는데 다국적 그룹이 1년도 안 돼 후보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쾌거이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캣츠아이는 일종의 플랫폼과 포맷의 수출이다. 문화적 트렌드가 오래 가기 위해선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K-팝 시스템이 게펜 레코드라는 미국 대중음악의 산증인과 만나 새로운 포맷을 구축한 사례”라고 봤다.
다만 이번 성취들이 온전한 K-팝의 성공이라기에 미적지근한 점이 있다. K-팝 산업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K-팝 그룹의 성취나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고 만들어진 K-팝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민재 평론가는 “워낙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국내 차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K-팝 개념은 아닌 데다, K-팝 전체의 경사로 보기엔 어려워 절반의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한편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는 빌리 아일리시의 ‘와일드 플라워’, ‘올해의 레코드’는 켄드릭 라마와 시저의 ‘루더(luther)’, ‘올해의 앨범’은 배드 버니의 ‘DtMF’가 받았다. 이 부문 최초의 비영어 앨범 수상작이다.
그래미 어워즈는 가수, 프로듀서, 녹음 엔지니어, 평론가 등 음악 전문가 단체인 레코딩 아카데미가 1959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상업적 성과보다 음악성에 무게를 두는 데다 수상 예측이 어려운 것은 물론 수상 역시 까다로워 후보 입성만으로도 엄청난 영예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한국인으로는 클래식 부문에서 소프라노 조수미(1993년)와 음반 엔지니어인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2012·2016년)가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