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10년 장기투자’ 초장기펀드 추진…운용사 회의론 ‘고개’

8800억 규모 ‘국가 핵심기술 육성’ 청사진
PEF업계, 초장기·낮은 보수율·리스크 등 우려 높아


2025년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왼쪽 네번째부터),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이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산업은행이 ‘2026년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위한 운용사 선정 절차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닻을 올렸지만 정책 포트폴리오 중 하나인 초장기기술투자펀드를 바라보는 사모펀드(PEF)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가 핵심기술을 키워내기 위해 10년 이상 장기 투자를 전제로 설계됐지만 투자 현장에선 실제 펀드 운용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이날 오전 국민성장펀드의 간접투자방식 자금모집을 위한 첫 단계로 개시한 재정모펀드 위탁운용사 선정을 마감했다.

이번 운용 계획안 중 특히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대목은 정책성 펀드와 별도로 신설되는 초장기기술투자펀드다. 약 8800억원 규모로 조성되는 초장기기술투자펀드는 10년 이상 장기 투자가 가능한 프로젝트 펀드의 형태를 띤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유망 기업들이 조기 상환 압박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연구개발(R&D)과 사업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기술 상용화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국가 핵심기술 육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투자 가이드라인도 구체화됐다. 산업은행의 ‘국민성장펀드(간접투자분야) 2026년 재정모펀드 위탁운용사 선정계획’에선 목표결성액의 75%, 초과결성액의 40% 이상을 첨단전략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투자 수단은 ‘보통주 또는 상환권 없는 종류주식’으로 한정됐다. 앞서 산업은행 국민성장펀드 투자운용국 실무 책임자들은 지난달 열린 PEF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이같은 계획을 설명하며 운용사(GP)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청사진과 달리 초장기기술투자펀드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GP들은 인력 관리의 한계와 낮은 보수 체계, 하방 경직성 등에 대한 우려로 인해 공고 기간 내내 참여를 두고 고심에 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GP는 ‘초장기 운용’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10년 이상의 투자 기간은 5~7년 주기로 펀드를 청산하고 새 펀드를 결성하는 PEF의 일반적인 흐름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출자자(LP)들은 어떤 매니저가 펀드를 운용하는 지도 중요하게 보는데,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펀드에 인력을 묶어두면 운용역의 이직이나 세대교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낮은 보수 체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초장기기술투자펀드의 운용 보수율은 0.35%다. 업계 관계자 B씨는 “통상 대형 블라인드펀드의 관리보수가 1~2%, 아무리 낮아도 0.8% 선에서 형성되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펀드의 운용 보수율은 매우 낮은 수치”라고 말했다.

나아가 이러한 보수 체계가 결국 유능한 운용역들의 이탈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운용사 대표 C씨는 “관리보수가 낮으니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일 유인책도 부족해지고 운용사 역시 이들을 장기간 붙잡아둘 명분이 사라진다”고 밝혔다.

딜 설계 조건 또한 GP들이 난색을 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고위험 투자시 GP들은 메자닌이나 채권 형태를 활용해 금리를 보장받거나 원금을 우선 회수하는 방어책을 두는데, 초장기기술투자펀드에선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아 기업의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경우 투자금을 날릴 위험이 크다.

업계 관계자 D씨는 “지금으로선 기업이 망가졌을 때 원금을 건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물음표가 붙는 구조”라면서 “실패 시 책임론이 뒤따르는 정책 펀드임에도 불구하고 운용사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초장기 펀드 참여를 독려하는 게 모순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산업은행이 운용사를 평가할 때 보는 DPI(Distribution to Paid-In Capital, 현금 배분율) 지표 때문이다. DPI는 투자한 돈 대비 실제로 현금화해서 돌려준 돈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내부수익률(IRR)이 높더라도 회수율이 이에 못미친다면 DPI는 낮게 책정된다.

업계 관계자 E씨는 “GP들에게 DPI 수치를 가져오라며 회수 능력을 압박하던 산업은행이 정작 자금을 10년 넘게 묶어버리는 펀드를 내놓은 것은 아이러니”라고 했다.

한편 산업은행 측은 이번 초장기 펀드 설계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에 발맞춘 ‘정상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초기 단계에서 정책자금의 성과를 빠르게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해 해외 시장에 비해 만기가 지나치게 짧게 형성된 측면이 있다”면서 “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 구조로 이행하는 것은 국내 자본시장의 체질을 선진화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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