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이 안타까웠던 경동나비엔의 고민… ‘연통 회사’는 왜 ‘공기 회사’가 됐나

경동나비엔의 창업주 동암 손도익 명예회장은 전쟁중이던 1951년 ‘무산연탄’을 창업했다. 민둥산이 된 산들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된다’고 판단했던 터였다. [경동나비엔]


연탄에서 시작된 친환경 기술의 역사
콘덴싱으로 산업의 기준을 바꾸다
글로벌 47개국이 선택한 난방·온수 기술
이제 ‘공기’를 책임지는 경동나비엔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70년 전, 산은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는 연료 창고였다. 국민들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밥을 짓고 집을 데웠다. 그러나 땔감을 베어내는 손길이 반복될수록, 산은 점점 나무 한그루 없는 곳으로 변해 갔다. 점점 더 민둥산이 돼버리고 있는 능선을 바라보며, 한 사람은 오래 멈춰 섰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경동나비엔의 시작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땔감 사용으로 숲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경동나비엔의 창업주 고(故) 손도익 회장은 ‘연탄’이라는 대안을 떠올렸다. 취사용으로만 쓰이던 연탄을 난방에도 활용할 수 있다면, 산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발상이었지만, 실행은 집요했다. 연탄 아궁이를 새로 고안했고, 대량 생산을 위해 공정을 자동화했다. 기술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 태어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손 명예회장은 1951년 창업을 하며 산이 다시 무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회사 이름에 담았다. ‘무산(茂山)연탄’. 이후 경동탄광, 경동도시가스를 거치며 에너지 산업의 기초를 다졌고, 1978년 경동기계 설립은 오늘의 경동나비엔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연통과 불, 연료를 다루던 회사의 출발점은 분명 ‘에너지’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환경’이 있었다.

경동나비엔의 평택 ‘에코허브’ 공장은 스마트 팩토리다. 공정의 상당부분이 자동화 됐다. [경동나비엔]


기술은 언제나 한 발 앞서야 했다


경동의 기술사는 ‘먼저 고민하는 기술’의 연속이었다. 1988년,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개발했고,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스테인리스 콘덴싱 열교환기를 선보였다. 열효율을 높여 에너지는 덜 쓰고, 온실가스와 질소산화물 배출은 줄였다. 난방기기 하나가 도시의 공기를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당시로선 꽤 급진적이었다.

결과는 시장에서 증명됐다. 경동나비엔은 국내 보일러 산업 1위로 올라섰고, 콘덴싱 보일러 의무화라는 정책 변화의 배경에도 이 기술적 축적이 자리했다.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산업의 방향 자체를 바꿔놓은 셈이다. 하지만 경동나비엔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술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행동으로 옮겼다.

2006년, 사명 변경은 선언에 가까웠다. “에너지와 환경의 길잡이.” 이 문장은 이후 경동나비엔의 글로벌 전략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됐다. 세계 최대 온수기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며, 경동나비엔은 최고 효율의 콘덴싱 기술과 현지 주거 환경에 최적화된 설치 솔루션을 결합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북미 보일러 및 순간식 가스 온수기 시장 1위.

중국은 한중수교 직후인 1992년 이미 문을 두드렸고, 혹한의 러시아에서는 ‘국민 가스보일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유럽, 중앙아시아, 남미까지 영역은 빠르게 확장됐다. 현재 경동나비엔은 8개 해외 법인을 두고, 47개국에 보일러와 온수기를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2011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왔고, 2021년에는 국내 보일러 기업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전체 매출의 70%가 해외에서 나온다. 대한민국 난방·온수 기술의 표준이 세계로 수출되는 구조다.

이 모든 제품은 경기도 평택에 자리한 공장에서 태어난다.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보일러 생산 시설. 4만 평 부지 위에서 연간 200만 대를 만들어낸다. 설비, 검사, 물류까지 자동화된 이 공장은 단순한 제조 공간이 아니다. 경동나비엔은 이곳을 ‘에코 허브(Eco Hub)’로 부른다. 이름부터가 상징적이다. 에코허브란 ‘삶과환경을최적화하는친환경회사(Ecofriendly Companion by Optimizing Living & Environment)’를 가리키는 말이다.

AI 로봇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 ‘에코허브’는 오는 2028년까지 연간 생산 능력을 439만 대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미국, 중국 등 글로벌 생산 기지도 재편된다. 제조 효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결국 ‘더 적게 쓰고, 더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로 이어진다.

경동나비엔이 만드는 제습환기청정기의 제품 사진. [경동나비엔]


연통회사, 이제는 ‘공기’를 말하다


여기서부터 경동나비엔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역설을 품는다. 연통과 연소, 불을 다루던 회사가 이제 ‘공기’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경동나비엔은 환기청정기 라인업을 확대하고, 주방 후드·쿡탑과 연동해 요리 매연까지 관리한다. 실내 공기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경동나비엔은 2025년, SK매직의 전기레인지, 가스레인지, 오븐 등 세 개 분야의 영업권을 인수해서 ‘나비엔 매직’을 론칭한다.

‘보일러 회사가 무슨 주방기기냐’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단순히 주방기기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환기청정기와 연계해 요리매연을 포함한 공기질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실내 생활환경 가운데 가장 공기 오염이 심한 곳이 주방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주방을 잡지 않고선 공기를 얘기하기 어렵다”며 “주방후드에 3면 에어커튼을 장착하고, 환기청정기를 사용하면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동나비엔의 기술력과 에너지 절감 성능을 인정받아 ‘제습 환기청정기’는 소비자시민모임이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한국에너지공단이 후원하는 ‘제28회 올해의 에너지위너상’에서 에너지기술상을 수상했다

경동나비엔이 만드는 숙면 매트는 사계절 내내 최적의 수면 온도를 제공한다. 물의 온도와 공기의 온도가 함께 설계될 때, 진짜 ‘쾌적함’이 완성된다는 발상이다. 여기에 오염 걱정 없는 수처리 시스템까지 더해졌다. 인간의 건강한 삶에 꼭 필요한 ‘물’과 ‘공기’를 동시에 다루는 회사로 진화한 셈이다.

AI 기반 스마트 시스템은 이 모든 제품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는다. 난방, 환기, 수면, 수처리까지 집 안의 환경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확장 중이다.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 히트펌프 등 신재생 에너지 기술도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냉방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갖춘 콘덴싱 에어컨을 미국에 먼저 선보였고, 냉방과 청정, 습도 관리까지 가능한 제품을 국내외에 출시할 계획이다. 난방에서 냉방까지, 계절의 양극단을 모두 아우르는 ‘생활환경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경동나비엔의 기업이념은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이다. 주목할점은 기업 이념을 만든 때가 1970년대라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말하는 경영이념이 나온 것이 2000년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30년은 먼저 기업의 목표가 이윤을 넘어선 ‘그 무엇’에 있음을 알았던 회사가 바로 경동나비엔이다. 경동나비엔은 사회 공헌이라는 기업 이념에 따라 지난 2022년부터 업계에서 유일하게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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