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노봉법도 힘든데 일 기본법까지…“외국서 韓 보내면 퇴사 통보로 여길 정도” [입법독주 막아야 기업이 산다②]

대(對)기업 규제 속도·밀도 모두 높아져
노동생산성 하위권 정체
이미 주 52시간·중대재해법 등 시행
경영권 방어 수단조 사라져
내달 시행 노란봉투법도 부담 요인


쳇GPT 활용해 제작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노동자 권리 보호’라는 명목 아래 우후죽순 생겨나는 규제 입법이 기업의 투자·고용 여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경제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다수당 주도로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실노동시간 단축 등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규제에 경영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되자 재계는 “규제만 앞서가면 남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 감소”라며 ‘입법 과속’을 멈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3월 10일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을 비롯해 ▷일하는 사람 기본법 ▷주 4.5일제 ▷정년 연장 논의 등 근로 기준과 관련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저해할 수 있는 제도 변화가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리스크는 규제의 개수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더해지면서 급격히 커지는 모양새다. 기업이 대응할 시간과 완충 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법의 속도’가 ‘현장의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 사이 주 52시간제 도입을 시작으로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잇따르면서 기업 현장에서는 제도 적응조차 버거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규제가 누적되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장기 경영 전략을 세우기보다 단기적인 리스크 관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미 국회를 통과한 상법 1·2차 개정에 더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3차 개정안까지 논의되면서 경영권 방어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지만, 기업들이 요구해 온 배임죄 개편 논의는 당초 약속과 달리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주요 기업 옥죄기 입법 현황


문제는 생산성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 비용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51.0달러로, 37개국 중 26위에 머물렀다. 미국은 83.6달러로 한국의 1.6배 수준이며 독일(83.2달러), 프랑스(81.5달러), 영국(73.7달러)도 한국을 앞섰다. EU 평균(72.9달러)과 비교해도 20달러 이상 격차를 보인다.

현장에서는 이미 ‘1호만은 피하자’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 지침 해석을 둘러싼 논란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선제적 보수 운영’으로 내두부 대응에 나서고 있다. 과거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당시처럼 “괜히 첫 사례가 되면 감당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보험모집인이나 플랫폼 종사자처럼 특수고용 형태 전반을 근로자로 본다면 기업은 퇴직금, 각종 수당 등 추가 비용이 어디까지 늘어날지부터 계산하게 된다”며 “비용 구조가 바뀌면 영업·경영 전략을 다시 짤 수밖에 없고, 결국 사람을 쓰는 방식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노동시간 단축 논의도 넘어야 할 산이다. 주 4.5일제는 아직 시범사업 단계지만,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확산될 경우 인력 확보 부담과 경쟁력 저하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생산성 향상 없이 ‘시간만 줄이는’ 방식이 고착화되면, 기업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설비 자동화·해외 이전 가속화라는 지적이다.

높아진 노동권을 바탕으로 노조의 교섭 요구와 대응도 한층 적극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전날 열린 ‘제4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서 “우리 노사관계는 여전히 대립적 구조에 머물러 있으며, 국제 평가에서도 노동시장 경쟁력과 노사 협력 수준이 최하위권에 그치고 있다”며 “노사가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 역시 기업들이 꼽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자사주 질권 금지, 자사주 활용 시 주주총회 승인 의무 등은 ‘주주환원’ 차원을 넘어 경영 안정성과 재무 전략을 동시에 훼손할 수 있다는 게 재계 주장이다. 특히, 국내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주요국에서 활용되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제도적으로 제한돼 자사주가 사실상 유일한 방어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는 ‘먹튀’ 헤지펀드로부터 회사와 장기 주주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한데, 이를 대주주 이익으로만 몰아가는 프레임이 강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필립 반 후프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해 9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2차 상법 개정 추진을 보도한 8월 18일자 코리아헤럴드 1면 기사를 들어보이며 한국의 과잉 규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현일 기자


외국계 기업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유럽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한국 지사 발령이 나면 안 가려 한다”며 “한국에 오면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고 느끼고, 회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필립 반 후프 회장도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의도치 않게 위법 행위에 연루되거나, 합리적인 경영상 판단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과 공정한 경쟁 여건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입법 과속이 결국 국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는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와 노동시장 경직성이 결합해 연간 111조원(GDP의 4.8%) 규모의 손실을 초래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권 강화라는 취지가 일반 근로자의 권익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며 “노란봉투법은 시행을 유예하고,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장을 충분히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은 사회정책이 아니라 경제와 함께 움직이는 핵심 변수인데, 기업의 감내 여력을 키워주지 않은 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면 부작용이 먼저 드러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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