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의 신구 “외웠던 것 금방 잊어도…살아있으니 연기한다”

오는 3월 장진 연극 ‘불란서 금고’ 개막
‘최고령 배우’ 신구, 무대로 돌아와
장 감독 “신구 연극 보고 자극…글 써”

 

배우 신구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외웠던 것도 금방 잊고,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그래도 살아있으니 연기를 하는 거죠.”

무대 위 조명이 꺼지지 않는 한, 신구의 ‘연기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1936년생, 올해로 아흔이 된 신구는 대한민국 최고령 배우로 올라섰다. 그가 다정하게 ‘형님’으로 모신 배우 이순재가 세상을 떠나면서다.

신구는 1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놀(NOL) 서경스퀘어에서 진행한 제작발표회에서 “밥을 먹듯 연기를 하고 있다. 평생 해왔던 게 연극이니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했다.

늘 무대에 서왔지만, 올해는 보다 특별한 창작 초연작으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로도 잘 알려진 장진 감독이 2015년 ‘꽃의 비밀’ 이후 10여년 만에 집필한 신작 ‘불란서 금고’. ‘밤 12시 모든 전기가 나가면 금고를 연다’는 규칙으로 은행 건물 지하에 모인 금고 털이범 다섯 명의 욕망을 그린 이야기다. 신구는 전설적인 금고털이 기술자 맹인 역을 맡았다. 그와 함께 배우 성지루, 장현성, 장영남, 정영주, 조달환 등이 호흡을 맞춘다.

이 연극이 탄생 배경엔 신구가 있다. 장진 감독에게 창작의 영감을 준 뮤즈와 같았다. 장 감독은 “지난해 5월 신구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정말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며 “‘왜 난 저분을 내 연극에서 만나 뵙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 신구 [연합]

그러면서 “되든 안 되든 선생님을 무대에 모시는 글을 써보자는 생각에 신구 선생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첫 대사부터 썼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화 ‘박수 칠 때 떠나라’(2005)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연극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 감독은 지난해 9월께 탈고한 후 “따끈따끈한 프린트본을 들고” 신구를 찾아갔다. 그는 장 감독에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숙고에 들어갔다.

신구는 그런데도 “지금 보니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던 것 같다”며 “막상 작업을 해보니 극복하기 힘든 점도 있고 작품 해석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나이가 들어 노욕을 부린 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대한 신뢰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구는 “작품을 봤을 때 정말 재밌고 웃겼다”며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면 아쉬울 것 같았다”며 대본을 수락한 이유를 들려줬다.

신작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는 요즘 “몸이 신통치 않다”며 “몸이 마음만큼 움직여주지 않고, 대사를 외우는 일도 쉽지 않다. 나이 먹으면 왜 이렇게 되나 모르겠다”며 웃었다.

신구의 이야기에 장진 감독은 “연습실에서 선생님은 자리를 안 뜨고 언제나 펜을 쥐고 있다. 제가 (성)지루 형님에게 말하는 것도 다 받아 적고, 지루 형님이 대사를 조금 잊으니 바로 알려주기도 하신다”면서 “자신의 기준점에 미치지 못해 걱정하는 거지 관객을 만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장 감독이 만나 본 배우 중에 “기준점이 가장 높은 배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극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신구 [연합]

신구와 더블캐스팅 된 성지루 역시 “아직도 무대 위에서 툭툭 내뱉는 호흡을 볼 때마다 왈칵 눈물이 날 만큼 경이롭다”며 “(신구를) 닮아가면서도 나만이 갖고 있는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교수 역을 맡은 장현성 역시 “선생님과 함께 연습하며 몰랐던 것들을 깨닫고 울컥하는 순간이 많다”며 “선생님의 연기는 불필요한 것을 다 덜어낸 결정체 같다”고 했다.

사실 장 감독의 대본을 받고 한 달의 시간을 요청했던 데엔 이유가 있다. 장 감독은 “선생님이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몸이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한다”며 “그래서 집에서 걷는 연습부터 하셨다고 했다. 이 작품이 당신께서 ‘살아있는 이유’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 진심을 열심히 쫓아가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많은 작품 중 이 작품이 한 작품이길 바란다”고 했다.

연습 과정이 예전 같진 않다지만, 신구의 열정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내가 형님이라 부른 이순재 씨가 돌아가셔서 이제 모실 분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었는데, 평생 하던 일을 하는 거다”라며 “여의찮지만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개막은 오는 3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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