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확률 낮아도 환자 미충족 수요 최우선 투자
재단 중심 수익 재투자…뇌과학 선순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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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코펜하겐의 룬드벡 본사 전경. [주한덴마크대사관 제공]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중추신경계(CNS) 질환은 ‘마지막 남은 개척지’이자 ‘신약 개발의 무덤’으로 불린다. 뇌혈관장벽(BBB)이라는 물리적 장벽과 복잡한 발병 기전 탓에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이 항암제나 대사질환 치료제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덴마크의 ‘룬드벡’은 오히려 정체성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고 있다. 대중적인 항우울제 시장을 넘어, 치료 대안이 전무한 ‘신경계 희귀질환’으로 R&D 중심축을 옮기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주한덴마크대사관은 지난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해 룬드벡 본사를 비롯해 룬드벡 재단, 그리고 뇌 건강 정책 플랫폼인 ‘브레인 카운슬(Brain Council)’을 차례로 찾아 고위급 임원 및 관계자들과 미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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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알파이아트 룬드벡 기업 포트폴리오 및 제품 전략 총괄 부사장. [주한덴마크대사관 제공] |
룬드벡은 그간 국내에서도 ‘렉사프로’, ‘브린텔릭스’ 등 블록버스터급 항우울제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우울증이나 조현병처럼 이미 다수의 치료제가 존재하는 정신과(Psychiatry) 영역에서 알츠하이머병, 편두통, 다계통위축증(MSA) 등 전문 신경질환(Neuro-specialty) 및 희귀질환 분야로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 변화는 단순한 매출 확대가 아닌 ‘의학적 미충족 수요(Unmet Needs)’에 기반한다. 시장 규모가 작더라도 경쟁자가 없고 환자들의 고통이 극심한 영역을 선점해 기업의 독보적인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계산이다.
마리아 알파이아트 룬드벡 기업 포트폴리오 및 제품 전략 총괄 부사장은 “룬드벡의 전략은 단기적인 시장 확대가 아니라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뇌질환 영역에서 장기적인 의학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뇌질환은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이 가장 낮은 분야지만, 성공했을 때 환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라며 “룬드벡은 매출 규모나 경쟁 강도가 아닌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가장 큰 질환을 기준으로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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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코펜하겐의 룬드벡 재단 전경. [주한덴마크대사관 제공] |
글로벌 빅파마들이 CNS 분야의 높은 실패 위험을 피해 항암제나 비만 치료제로 눈을 돌릴 때, 룬드벡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동력은 독특한 지배구조에 있다. 룬드벡은 ‘룬드벡 재단’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이다. 단기적인 주주 이익 극대화에 매몰되지 않고, 수익을 다시 기초 과학 연구와 뇌과학 생태계에 재투자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룬드벡은 매출의 98%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며, 이 수익은 재단을 통해 세계 최대 뇌과학상인 ‘더 브레인 프라이즈(The Brain Prize)’ 운영과 신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덴마크의 ‘브레인 카운슬’ 같은 민관 협력 플랫폼 역시 뇌질환을 국가적 보건 의제로 격상시켜 기업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룬드벡의 실적은 이들의 전략이 한국 시장에서도 주효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2025년 3분기 기준 렉사프로와 브린텔릭스는 국내 우울증 치료제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룬드벡 재단 측은 “단기적인 상업성과 무관하게 뇌과학의 근본적 이해를 확장하는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결국 장기적인 치료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결국 룬드벡의 ‘어려운 길’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인류의 뇌 건강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향하고 있으며, 이는 K-바이오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