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미투자·입법 그대로”…전문가들 “관망 속 실리 전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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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명예교수 [헤럴드경제DB·뉴시스·동국대] |
[헤럴드경제=김용훈·양영경 기자]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에 일단 제동이 걸렸지만 관세 압박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무역법 122조에 따른 한시 관세에 이어 301조·232조 등 조사 기반의 대체 수단이 잇따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오히려 관세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통상 전문가들은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이 단기적으로는 관세 부담 완화 기대를 낳았지만, 장기적으로는 관세 구조가 ‘우회형’으로 재편되는 전환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상호관세처럼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은 어려워졌지만 무역법 122조·301조 같은 법률을 활용한 조각식 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 방향이 수시로 변할 경우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세 환급 문제 역시 “정부가 전면에 나설 사안이라기보다 관세를 낸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특히 무역법 122조에 따른 한시적 관세보다 301조·232조 등 조사 기반 관세가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번 판결을 한국에 특별한 호재나 악재로 단정하긴 어렵다”며 “대체 법률로 유사한 수준의 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판결 하나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통상 현안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 교수는 “상호관세가 위법 판결을 받으면서 미국 역시 법적 부담을 안게 된 상황”이라며 “미국이 민감하게 보는 비관세 장벽·온라인 플랫폼 규제·농산물 시장 개방 등의 이슈에서 상호 양보를 요구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도 “관세 압박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는 법적 방식이 바뀌는 과정”이라며 “232조나 301조처럼 조사와 절차를 거치는 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강경 대응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은 측면은 있지만 우리가 이를 섣불리 호재로 해석하거나 앞서 대응할 필요는 없다”며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서 몸을 낮추고 관망하는 식의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시욱 원장 역시 “향후 어떤 관세 수단이 선택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대법원의 판결에 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15% 관세 부과 발표 이후 우리 정부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합의 계획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청와대는 전날 ‘당·정·청 통상 현안 점검회의’를 열고 대미투자특별법 입법을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시욱 원장은 “투자 합의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보다는 상황을 보며 유연하게 조정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대미 투자가 핵추진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핵연료 재처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안보 현안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을 이유로 투자 속도를 늦추거나 재협상에 나설 경우 오히려 협상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부 역시 위법 판결에도 투자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이행위원회’를 통해 대미투자 후보 프로젝트 검토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실무단이 워싱턴DC를 방문해 미 상무부와 협의를 진행하는 등 투자 준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전략이 정치적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상호관세가 무너진 것은 분명히 호재”라며 “냉정하게 보면 트럼프 기세가 일정 부분 꺾였고 결국 관세 권한은 의회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 이후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반기를 들고 있는 만큼 향후 관세 정책은 의회 변수에 더 크게 좌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글로벌 관세는 최장 150일 한시 조치에 불과한 만큼 이후 연장 여부 역시 의회 판단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며 “단기 관세 압박이 이어지더라도 구조적으로는 정치 변수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직후 전 세계에 새롭게 부과한 ‘글로벌 관세’를 10%에서 하루 만에 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제동에도 대체 수단을 총동원해 고강도 관세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