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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비틀쥬스’로 돌아온 김준수 [CJ ENM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번에도 ‘탈인간계’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심지어 모두가 ‘물음표’를 던졌다. 늘 같은 편이 되어주던 코코넛(김준수 팬덤명)까지도. “준수야, (혹은 준수 오빠) 그냥 잘하던 거 하자”며 자제를 당부할 정도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졌다.
“캐스팅됐을 때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난 이후에도, 저조차 심지어 팬들조차 의아할 정도였어요. 우려가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돌아보면 공연 전 걱정과 우려에 비하면 반응이 좋아요. (웃음)”
‘샤큘’(동방신기 시절 이름인 XIA(시아)+드라큘라 역), ‘샤엘’(데스노트 L역) 등 수많은 별칭이 있었으나, 이젠 엄연히 ‘비틀쥰수’(비틀쥬스+김준수)다. 초록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관객의 고막에 욕설을 꽂아 넣는 ‘금쪽이’ 유령. 그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연습 때 해외 연출님조차 비틀쥰수로 불렸다”며 “이번엔 별칭 앞에 샤(시아)가 빠졌다”고 했다.
‘시아’는 김준수의 가수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이름이다. 단 하나의 단어만 빠졌을 뿐이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브로드웨이 원작의 거칠고 파격적인 캐릭터에 한국적 정서와 김준수의 브랜드를 녹여내기까지 그의 앞에 만만치 않은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또 하나의 ‘인생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 뮤지컬계엔 두 번의 변곡점이 있다. 하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초연한 2001년. 이때를 업계에선 한국 뮤지컬 산업화의 시작점으로 본다. 또 다른 하나는 김준수가 ‘모차르트!’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오른 2010년 1월 26일이다. 이날은 ‘한국 뮤지컬의 날짜 변경선’으로 불린다. 김준수의 등장이 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끌었기에 붙여진 수사다.
오랜만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등장했다. 김준수와 ‘비틀쥬스’의 만남. 사실 김준수의 ‘전매특허’는 탈인간계 캐릭터지만, 비틀쥬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영생의 아이콘(드라큘라)도, 죽음(엘리자벳) 등 내내 심각하고 진지했던 배역만 맡았던 것. 하지만 이번엔 100억 살을 먹은 유령, ‘웃겨야 사는’ 역할인 거다.
김준수는 “이 작품을 하기로 하고 매우 많은 우려가 따라왔다”며 “그래서 더 탐이 났다. 그동안 늘 도전해 왔지만 그 어떤 도전보다 더 큰 결심을 했던 선택이었다”고 ‘비틀쥬스’와의 첫 만남 과정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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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준수가 ‘비틀쥬스’를 통해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CJ ENM 제공] |
만남은 뒤늦게 성사됐지만, 인연은 길었다. 이 작품은 2021년 초연 때부터 김준수에게 캐스팅 제안이 갔던 역할이었다.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는 그는 당시 다른 작품 일정으로 아쉽게 ‘비틀쥬스’ 역을 고사했다.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괴팍한 유령 비틀쥬스가 인간 소녀 리디아와 만들어가는 ‘인간 되기 프로젝트’를 담았다.
오랜 기다림은 보람으로 돌아왔다. 김준수가 출연하는 ‘비틀쥬스’는 그의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뮤지컬계 슈퍼스타답게 김준수의 공연은 매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이다. 물론 그의 작품은 늘 ‘매진’ 행렬이나, 이번엔 이전의 파급력을 넘어선다. 새로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배우로서 성취까지 더해져 그에게도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게다가 ‘개그 본능’에 대한 꿈도 이뤘다.
“사실 제가 웃기는 걸 정말 좋아해요. 저, 친구들 사이에서는 거의 개그맨이거든요. 누군가를 웃겼을 때 그 짜릿함, 희열감이 엄청나요. 진지하고 멋진 척하는 역할에서도 웃겨도 되는 신이 나오면 맘껏 활용하려고 노력했던 배우이고요.”
‘비틀쥬스’에 도전한 것도 주체할 수 없는 ‘개그 열정’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본격 코미디는 아니었으나 ‘알라딘’을 하면서 객석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까르륵’ 소리가 너무 좋고 배우로서도 힐링이 됐다”며 “스스로를 깨고 싶은 마음과 함께 잘 해내면 배우로서 성장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다”고 했다.
타이밍도 적절했다. 16년 전 뮤지컬계에 입성해 한국 뮤지컬의 성장 신화를 함께 쓴 그는 “‘킹키부츠’, ‘알라딘’과 같은 쇼 뮤지컬도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국내 뮤지컬 관객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비틀쥬스’가 더 깊어진 블랙 코미디이긴 해도 이같은 분위기라면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선구안도 작품을 선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다.
큰맘 먹고 도전했지만, 연습 과정에선 ‘후회의 연속’이었다. ‘캐릭터의 수위가 높아 이 정도라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본격적인 블랙 코미디에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맛깔나는 욕설’은 그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팬들은 제가 평소에 욕을 아예 못 하는 줄 알더라고요. 그게 저한텐 일종의 (이미지) ‘족쇄’였어요. 저도 욕할 줄 알거든요. (웃음) 그런데 무대 위에서 이렇게 대놓고 욕을 해야 하니,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많았죠. 연습 때는 ‘지금이라도 못 한다고 할까’ 싶을 만큼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어요.“
게다가 비틀쥬스 역할은 노래는 기본, 다른 작품의 3배에 달하는 압도적 대사량, 무대 장치와 딱 맞춰야 하는 ‘마술 타이밍’,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제스처까지 3시간(인터미션 포함) 내내 퇴장도 하지 않고 존재감을 나타내야 한다. 한 마디로, ‘비틀쥬스의, 비틀쥬스에 의한, 비틀쥬스를 위한’ 뮤지컬이다.
그는 “(노래할 땐) 음악 루프(Loop)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박자 안에 대사를 다 욱여넣어야 한다”며 “자다가도 버튼을 누르면 AI(인공지능)처럼 대사가 튀어나와야 해서 연습량이 평소의 2~3배는 많았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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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준수. [CJ ENM 제공] |
워낙 ‘말맛’이 좋은 대본이나, 한국화 과정에선 배우들의 센스가 입혀졌다. 일본 애니메이션 밈으로 빅히트를 친 ‘이누야사’의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떠납니다”라는 마지막 대사를 제안한 것도 김준수다. 연출진은 처음에 “그게 뭐냐?”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첫 공연에서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무릎을 쳤다.
심지어 비틀쥬스의 ‘애착 인형’인 극 중 ‘아담’과의 티키타카는 매회 진화 중이다. 개그의 본질인 ‘반복의 미학’과 ‘순발력’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어젠 내 땀이 튀어서 아담 입에 들어갔어요. 아담이 이 부분을 언급했던 장면과 연결해서, 마지막 유언 장면에서 ‘이거 로열젤리야’라고 받아쳤죠. 매회 한 신이라도 다르게 하려고 해요. N차 관람객들에 대한 예의이자 제 즐거움이기도 하거든요.”
김준수는 매 무대에서 ‘죽을 것처럼’ 산다. 동료 배우와 제작진이 혀를 내두를 정도. 모든 캐릭터를 ‘김준수화’해, 자기만의 정체성으로 표현하니 때론 그의 연기가 기본값이 된다. ‘엘리자벳’의 죽음을 상징화한 토드 역할의 경우 애초 춤을 추지 않았으나, 김준수는 룰을 바꿨다. 그로 인해 전 세계 토드에게 ‘춤’은 기본 조건이 됐다. 이미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갔으나, 그는 이 작품으로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동안에도 저만의 색깔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작품 보는 눈이 탁월한 거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는 아니다’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잘 해내면 적어도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잘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의 성향이 ‘I(내향형)냐 E(외향형)냐’에 따라 반응의 농도는 다르나, 공연장은 늘 웃음이 넘친다. 그는 “좀 덜 웃으실 땐 분하지만, 관객 성향에 맞춰 완급조절을 한다”며 “반응이 특히 좋은 날엔 온갖 애드리브를 쏟아낸다”고 했다. ‘개그의 한’을 풀어내는 요즘 매일의 공연이 즐겁다. 김준수는 “저의 애드리브 타율이 굉장히 높다”며 조금 뜸을 들이더니 “스스로 웃기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웃었다.
‘비틀쥬스’로 새해를 연 김준수의 일정은 2028년까지 꽉 채워져 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새 캐릭터도 기다리고 있고, 올해엔 10년 만에 정규 앨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대에 서며 욕심이 있다면, 관객들이 제 공연을 보고 ‘푯값이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게 제 유일한 사명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