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 고아성·문상민 “미완의 청춘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는 영화이길” [인터뷰]

서로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청춘의 이야기
“마음을 닫고 시작해 서서히 여는 사랑 영화”
헤어졌으니 새드엔딩?…“다시 만날 것 같아”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사랑에는 자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색깔과 모양에 대한 정해진 답도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마냥 아름답길 바라는 이상을 사랑의 규격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빛나는 이들의 특권처럼 그려지는 사랑은 아직은 어둡고 불완전한 청춘에게 관대하지 않다. 혐오와 각자도생의 시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에게 그 자체로도 사랑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각색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그 어둠과 불완전함에 숨은 상처를 온전히 껴안고서,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세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정(고아성 분)과 요한(변요한 분), 그리고 경록(문상민 분)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화려한 겉치레 대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그것은 익숙한 핑크보다는 초록과 파랑에 가깝고, 따뜻하기보단 어딘가 서슬하며, 예쁜 하트라기보다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돌멩이와 비슷하다.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툰 시절의 설렘과 기쁨, 혼란과 상처, 그것이 주는 이별과 그리움까지 사랑의 서사에 담는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주저하고 있을 청춘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누가 뭐래도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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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고아성과 문상민을 각각 만났다. 배테랑 고아성에게 ‘파반느’는 첫 멜로 영화이고, 문상민에겐 첫 영화다.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진심이었어요. 그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어서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문상민) 진심 어린 이야기와 숙고를 위한 잠깐 잠깐의 침묵들이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각별함과 애정을 느끼게 했다.

연출과 각색을 맡은 이종필 감독은 10년 전부터 원작의 영화화를 준비했다. 고아성은 이 감독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을 촬영하기 전인 2017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다. 촬영이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7년 후였다. 출간 당시 원작을 읽었다는 고아성은 ‘파반느’가 자신의 첫 멜로 영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긴 시간을 기다렸다.

“저는 영화는 ‘사랑 영화’라는 데 공감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멜로는 도전하는 데 신중하게 되고, 왠지 아껴두게 되더라고요. 파반느가 제 첫 멜로 영화가 됐고, 그것을 지키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이종필 감독이 그리는 여성상에 대한 믿음이 컸죠.”(고아성)

고아성이 연기한 ‘미정’은 음울한 인상과 어두운 분위기로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뎌온 인물이다. 작중에서 그는 스스로를 ‘마음속 깊은 어둠을 지닌 인물’이라 설명한다. 무겁기만 한 그의 걸음걸이와 몸짓, 좀처럼 공기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느린 목소리. 백화점 지하 공간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미정은 빛보다 존재를 감출 수 있는 어둠이 더 익숙한 인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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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은 생각이 떠오르면 두세 번 곱씹어보고 입을 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아닌 거죠. 그리고 말보다는 글이 익숙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글씨 하나하나도 눌러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식으로 소소하게 캐릭터를 빌드업 해나갔던 것 같아요.”(고아성)

소설에서 ‘그녀’로 표현되는 미정은 못생긴 여자다. 고아성은 캐스팅 당시 ‘못생긴 설정’이 어울릴지 의문을 가진 이 감독에게 ‘저는 이 인물의 눈을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모든 설정과 치장을 벗어던지고서, 눈만으로도 인물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고아성의 지론이다. 그는 “노숙자 연기를 할 때는 허름한 행색을 빼고서 눈만 보고도 노숙자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한 선배 배우의 인터뷰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며 “내가 ‘미정의 눈을 갖고 있다’는 말도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잔뜩 움츠린 채 바닥만 응시하며 삶을 걸어 온 미정에게 빛을 밝힌 것은 백화점 주차요원 경록이다. 경록의 적극적인 관심에 미정의 의심은 점차 관심과 호감으로 번진다. 경록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을 ‘무(無)’의 존재로 살아온 경록. 그는 미정에게서 특별함을 느끼고,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미정 씨를 만나면 우리는 진짜구나’라는 확신이 들어요.” 무미건조했던 경록의 얼굴이 조금씩 따스한 미소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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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에게 어머니를 투영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는데요. 미정이 경록을 신경 쓰이게 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미정을 보고 있으면 경록이 ‘저 사람 옆에서 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반대로 나 역시 미정이란 사람을 빛나게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상민)

텅 비어버린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다. 자칫 보는 이로 하여금 ‘저 인물은 대체 뭐하는 거지?’란 모호함을 줄 수 있어서다. 문상민이 찾은 답은 보통의 청년을 투영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경록은 불안하고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평범한 20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경록은 무에 가깝지만 미정과 요한을 만나면서 하나씩 뭔가를 찾기 시작해요. 변화가 찾아온 경록은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스무살 중반의 청년이었으면 했어요.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그 나이대의 청춘 있잖아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니까 경록의 캐릭터성이 잡혔던 것 같아요.”(문상민)

여기에 넉살 좋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마찬가지로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있는 요한까지. 세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앙상블은, 불완전한 내면을 가진 영혼들의 상처가 서로를 통해 아물어가는 시간으로 기능한다. 각각 20대와 30대, 40대를 걸어가고 있는 세 배우가 만들어낸 케미가 독특하고도 신선하다.

“아마 세 캐릭터가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세 명의 각기 다른 어두운 내면을 가진 청춘이 있어서, 서로가 상호 보완해 주는 느낌이에요. 실제로 저희들이 각각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데도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이 신기해요.”(고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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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의 어둠에서 함께 뛰어나온 미정과 경록은 햇볕이 내리쬐는 옥상에서 함께 무지개를 바라본다. 어둠을 찾아온 빛, 빛이 깃든 어둠. 여기에 록과 클래식이 흐르는 영화는 감독의 말처럼 “빛과 어둠에 관한 영화”이자 “음악 영화”다.

두 배우에게 ‘파반느’는 어떤 영화인지에 대해 물었다. 보통과는 조금은 다른 이 ‘멜로 영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꽤나 인상 깊다.

“파반느만의 특별한 점은 마음을 닫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정의 입장에서 경록이 호기심에 다가올 때 그를 믿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서서히 마음이 열리는 것이 다른 멜로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고아성)

“저희 영화는 한 명의 시점이 아니라, 세 명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로맨스에요. 세 명의 청춘이 돋보이는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경록이도 아마 요한이가 없었다면, 미정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표정이란 것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문상민)

영화의 끝은 비극이다. 서로가 있기에 더없이 찬란했던 청춘의 순간은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된다. 하지만 두 배우는 마치 미리 이야기를 나눈 듯 모두 ‘비극이 아니다’며 입을 모았다. 그 안에는 무엇이 해피엔딩인지에 관한 생각, 그리고 미정과 경록이 다시 만날 것이란 기분 좋은 상상이 담겨 있다.

“경록과 미정이 만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했잖아요. 마지막에 끝내 두 사람의 속도가 맞춰졌다고 생각했어요. 경록은 떠났지만 진짜 떠난 것이 아니라고요. 두 사람의 속도가 같아졌으니 해피엔딩이 아닐까요.”(문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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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원작 개정판에서 작가님이 먼 훗날 경록과 요한, 미정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에필로그를 써주셨어요. 이 이야기를 감독님이 전화로 전해주시면서, 저희 영화에 대한 답가 같다며 우시더라고요. 저 역시 세 영혼이 어느 세계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해요.”(고아성)

영화는 청춘에 관한 이야기이자, 청춘을 향한 위로이며, 그들을 위한 메시지다.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한 영화’.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주하는 미완의 청춘을 통해, 오늘의 청춘에게 담담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미정을 연기하고, 경록과 요한을 만나면서 어떠한 한 줄기 빛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이 영화가 보시는 분들에게 한 줄기 빛이 잠시나마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고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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