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제안’만 받아도 공시 추진…투자업계 “현실성 떨어져” 갸웃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안 발표
M&A 제안 및 진행 단계에 공시 의무화
투명성 강화 취지 설득력…“M&A는 보안이 생명” 위축 우려도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정부가 저성과·부실 기업의 퇴출을 촉진하기 위해 인수·합병(M&A) 제도를 손질한다. 인수 제안 단계에 공시 의무를 부과해 지배주주 중심의 경영권 방어 관행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지만 M&A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는 지난 18일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적대적 M&A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저성과·부실 기업이 우량기업에 흡수 및 구조조정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적대적 M&A란 대상 기업의 동의 없이 매수자가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M&A 방식을 말한다.

핵심은 공시 강화다. 우선 ‘인수 제안’ 단계에서 소액주주가 거래 합리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배경과 추진 경과 등을 공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공시 대상은 경영권 변동이나 상장폐지를 수반하는 M&A 제안으로 인수 목적, 인수가격 및 산정 근거, 자금조달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담긴 제안을 받은 경우다. 논의 진행 단계에서 이사회 책임도 강화된다. 이사회는 주주 충실의무에 기반해 매수가격의 공정성 등을 검토하고 그 입장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M&A 제안 및 진행 과정에 대한 공시 의무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입장을 대변해 제안을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경영권 방어에 집중하는 관행이 지속돼 왔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4년 제도 개선을 통해 합병 결정 이후 이사회 판단 근거와 거래 적정성을 사후적으로 공개하도록 했지만, 이번 방안은 비공개로 진행되던 협상 과정 자체를 시장에 노출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장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M&A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경영권 거래 실패 가능성만 높인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M&A는 보안이 핵심이다. 제안 단계부터 공시가 이뤄지면 주주와 직원 등 이해관계자가 움직이면서 협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제안 사실만으로도 주가가 변동해 계약 체결 전 변수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거래의 출발점에 불과한 제안 단계에서 공시가 이뤄지면 확정되지 않은 내용으로 주가가 급등락할 수 있어 가격 협상이 지연된다는 지적이다. 또 매도자, 인수자, 소액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가 모두 개입해 딜이 무산될 수 있다.

M&A는 ‘제안→협상 및 실사→주식매매계약(SPA) 체결→자금 조달(필요할 경우 정부 승인)→클로징’으로 이어지는 장기전이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이 소요된다. 제안 단계에서는 대상 기업에 대한 정보 접근이 제한되는 만큼 대략적인 가격과 거래 구조 정도만 협상 이후 재무, 법률 실사 등을 거쳐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간다.

상장사 인수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사모펀드(PEF) 관계자도 “제안 단계에서 사전 공시가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실무적으로 계약 체결 직전 단계에 이르러서야 그때 제안 받은 것으로 하고 뒤늦게 공시할 것 같다. 자금조달 계획까지 갖춘 ‘정식 제안’만 공시 대상이라면 현행 제도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장기적으로 M&A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의무공개매수 도입도 부담스러운데 공시까지 강화되면 상장사 M&A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며 “소액주주를 보호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M&A를 시도할 유인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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