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시 가는 SK하이닉스…AI 반도체 패권 승부수

국내발행 주식 활용한 간접상장
AI경쟁 천문학적 투자재원 필요
경쟁사 대비 저평가 요인도 해소
“AI 고도화, 메모리 수요 근본변화”


곽노정 사장. [연합]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 상장에 나섰다. 세계 최대 금융투자 시장에서 자금을 보다 용이하게 조달하고, 이를 토대로 차세대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24일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 제출했다고 25일 밝혔다. ADR은 직접상장이 아닌 국내 기발행 주식을 활용한 간접상장 방식이다. 정식 IPO(기업공개)를 위한 회계 기준 전환, 공시 체계 개편, 심사 등에 소요되는 시간·비용을 줄일 수 있는 동시에 SEC 규제 리스크에서도 한 발 비켜날 수 있다.

▶SK하이닉스 “투자 규모·방식, 완전히 달라져”=SK하이닉스가 ADR 상장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글로벌 AI(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에 천문학적 투자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도 이로써 투자 자금을 충당하긴 역부족인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작년말에도 자료를 내고 첨단산업 투자 규제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반도체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 첨단 기술 경쟁 심화로 투자의 규모와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며 “투자 규제 개선 논의의 출발점은 특정 기업이나 개별 사안이 아니라, 급변한 환경 속에서 첨단산업 투자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대형·장기 투자가 요구되는 환경에서 기존의 자금 조달 방식만으로는 투자 시기와 규모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일례로 클린룸 1만평 기준의 투자비는 지난 2019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당시 약 7조5000억원이었지만, 2025년 10월 말 오픈한 청주 M15X에서는 20조원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또한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투자 시점과 수익 회수 시점이 일치하지 않지만, 기술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선제적이고 연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5일 주주총회가 열린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


▶“글로벌 경쟁사들과 ‘밸류 키맞추기’”=동시에 이번 ADR 상장은 기업가치 제고의 일환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세계 1위 HBM 제조사임에도 불구, 다른 반도체 기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아 온 게 사실이다. 올해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에서 미국의 경쟁사 마이크론은 7.8배로 SK하이닉스(5.9배)를 웃돈다. 샌디스크(17.6배)는 SK하이닉스의 3배 가까이 된다. SK하이닉스 주가가 최근 많이 오른 상황에서도 동종 회사들과 비교시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 ADR 상장을 통해 양사 간 밸류에이션 격차를 줄이려는 흐름, ‘키맞추기’가 나타날 수 있다”며 “ADR을 통해 형성되는 가격이 글로벌 투자자 기준의 새로운 밸류에이션 기준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수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ADR로 상장할 경우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 등 글로벌 지수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SOX는 세계 최고 규모의 반도체 ETF가 추종하는 지수로, 이 지수에 포함되면 국내 시장에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대규모 패시브·액티브 수요가 예상된다.

SK하이닉스 본주와 ADR 간 기업 가치 평가나 주가 등에 차이가 벌어지면 환율 등까지 감안한 셈법을 따져야 할 공산도 있다. 현재와 같은 고환율 환경에서는 달러 기준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높아 ADR 수요에 유리하다. 향후 원화 강세로 전환될 경우 달러 투자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ADR 투자 매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일각에선 신규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 우려도 제기한다. 하지만 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최대주주인 SK스퀘어가 지분율 2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에서 신주 발행의 주식 수가 지분 희석을 우려할 수준이 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김영건 연구원은 “ADR 기준가는 국내시장에 상장된 본주에 환율과 ADR 교환 비율을 고려해 결정될 예정”이라며 “다만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새로 수요를 예측하는 만큼, 현시점의 사업 전망을 적시적으로 반영한 가치평가가 이뤄져 새로운 밸류에이션 기준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증권가는 펀더멘털 개선 기대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지난 24일 SK하이닉스의 12개월 목표주가를 193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최근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주가 약세는 매수 기회”라고 언급했다.

▶곽노정 사장 “차세대 스토리지 개발 글로벌 파트너와 협력 중”=한편, 이날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SK하이닉스의 제78기 정기주주총회가 개최됐다. 곽노정(사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지난해 AI 기술 확산으로 AI 메모리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가격도 상승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전 제품에 걸친 메모리 수요 성장과 AI 메모리 판매 확대에 힘입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97조1467억원,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각각 전년 대비 47%, 101% 성장한 규모다.

SK하이닉스는 D램에서 역대 최대 매출·영업이익 달성을 했다. HBM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곽 대표는 “AI 기술이 추론 중심으로 고도화 되면서 메모리 수요는 HBM 뿐 아니라 범용D램·낸드로 확대돼 메모리 수요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HBM이 수요 확대를 이끄는 가운데 AI 및 데이터센터 산업 성장으로 고성능 DDR5 등 프리미엄 제품 수요도 견인했다. 범용D램에서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원가 경쟁력을 갖춘 1c(10나노급 6세대) 기반 DDR5 제품을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 아울러 업계 최대 용량의 서버용 256기가바이트(GB) DDR5 모듈로 서버 모듈 분야에서도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다졌다.

낸드는 AI 인프라에서 고성능·고용량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e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수요 증가를 주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세계 최고 단수인 321단 QLC 제품을 개발해 기술 한계를 다시 한번 돌파했다.

재무 건전성도 개선됐다. 부채비율은 2024년 말 64%에서 2025년 말 46%로 크게 낮아졌으며, 2024년 말 8조5000억원 규모였던 순차입금은 2025년 말 순현금 12조7000억원으로 전환했다.

서경원·김유진·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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