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심심해도 괜찮아…안방·극장 가로지르는 ‘다큐’의 물결

‘SBS 스페셜’ 주요 작품들 넷플 상위권 안착
팬데믹으로 폐지됐던 KBS ‘다큐 3일’ 부활
‘힌드’부터 ‘미야자키’까지 극장도 다큐 인기

 

tvN ‘앙상블’ [tvN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다 차별 없이, 다 행복하게, 어떻게 어우러질지 기대가 돼요.”

내달 14일 17개국, 31명의 다문화 어린이들로 구성된 글로벌 합창단의 여정이 시작된다. 목표는 글로벌 경연대회인 대한민국국제합창대회 도전. 문화도, 언어도, 배경도 제각기 다르지만, “다른 소리가 만나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것”(김문정 감독)은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이 함께 울고, 웃고, 노래하며 써 내린 90일간의 감동 드라마. 내달 14일 공개되는 tvN 다큐멘터리 ‘앙상블’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K-팝’, ‘K-드라마’ 등 K-콘텐츠의 인기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K-다큐멘터리’가 그 흐름을 이어받았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특유의 따뜻한 정서가 두드러지는 ‘K-다큐’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도 인기 상위권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바야흐로 ‘다큐멘터리’의 시대다.

감동과 성찰의 이야기…넷플까지 사로잡은 K-다큐

 

SBS 스페셜 [SBS 제공]

25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근 S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BS 스페셜’이 선보인 주요 작품들이 넷플릭스 대한민국 톱 10에 잇따라 안착했다.

지난 22일 종영한 발달장애 청춘들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내 마음이 몽글몽글 상담소’는 8위에 올랐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삶을 담아낸 ‘미쳤대도 여자야구’는 공개 직후 톱 10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월 공개된 ‘더 코리안 쉐프’는 음식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 속에 시리즈 순위 3위에 안착했다.

호흡이 빠른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자극적인 장면과 서사 대신 느린 호흡으로 현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기가 커지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장에서 발로 뛰어 얻은 생생한 기록과 연출,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낸 시선이 시청자에게 재미 이상의 감동과 성찰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SBS 측은 “자극적 소재와 빠른 전개 콘텐츠가 주류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도 잘 만들어진 정통 다큐멘터리는 반드시 선택받는다는 ‘콘텐츠의 본질’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 ‘다큐멘터리 3일’ [KBS 제공]

한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다큐멘터리는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데다 현시대의 성찰과 고민을 잘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한 포맷”이라면서 “인공지능(AI)과 같은 가짜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다큐멘터리가 가진 진정성이 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인기 다큐 프로그램의 반가운 부활 소식도 있다. KBS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폐지됐던 ‘다큐멘터리 3일’을 내달 6일부터 다시 방송한다. 프로그램 폐지 당시 1000명이 넘는 시청자가 폐지 반대 청원을 벌일 정도로 아쉬움이 컸고, 시청자의 애정에 힘입어 지난해 KBS는 ‘안동역 10년의 약속’을 담은 ‘다큐멘터리 3일’ 특별판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시 출발선에 선 ‘다큐멘터리 3일’의 첫 번째 행선지는 서울의 대학가를 가로지르는 ‘273번 버스’다.

이지운 책임프로듀서(CP)는 “화려한 섭외와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에 지친 시청자들이 ‘다큐멘터리 3일’을 보며 ‘우리 모두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새삼스러운 위로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tvN은 두 편의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열풍에 가세한다. 글로벌 어린이 합창단의 대회 도전기 ‘앙상블’과 K-콘텐츠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K입니다’다.

tvN ‘나는 K입니다’ [tvN 제공]

‘맘마미아’와 ‘레미제라블’, ‘명성황후’ 등 대표적 대작을 진두지휘해 온 김문정 감독과 ‘팬텀’의 채미현 감독이 이끄는 리얼 다큐 ‘앙상블’은 다문화 어린이들의 하모니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포용과 이해, 존중이라는 가치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발달장애 청춘들도 반짝이는 ‘보통의 청춘’임을 담아내 큰 호평을 받았던 SBS 스페셜 ‘몽글상담소’와 궤를 같이한다.

‘앙상블’ 제작진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네트워킹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아이들이 목소리를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진실한 어우러짐이 무엇인지 전하고 싶었다”면서 “아이들의 다름의 시너지와 순수한 열정으로 피어난 앙상블을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tvN은 내달 7일과 8일 다큐멘터리 2부작 ‘나는 K입니다’를 순차 방송한다. 국내외 K-콘텐츠 관계자들이 다양한 시선과 통찰로 K-콘텐츠 신드롬의 본질을 해석한다. 오로지 질문과 답으로만 전체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터뷰 중심의 ‘보이스 다큐멘터리’다.

인터뷰이의 면면이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이번 다큐멘터리에는 박찬욱 감독, 김은희 작가, 배우 이정재, 장혜진, 임윤아, 이준호, 임시완, 최우식, 변우석, 김민하, 이채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아덴 조 등 K-콘텐츠 신드롬 대표 주역부터 문희준, 토니안, 선미, ONEW, ATEEZ, P1Harmony, TWS, izna 등 K-팝 붐을 이끄는 주인공들이 대거 참여했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A. 로빈슨, 아카데미 최초 아시아계 회장 자넷 양, 유럽 비교사 분야의 세계적 거장인 도널드 서순 런던대 명예교수 등 글로벌 석학들이 K-신드롬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전한다.

그날의 생생한 증언…극장가 두드리는 ‘다큐’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찬란, (주)더콘텐츠온 제공]

극장가에서도 다큐멘터리 작품의 개봉이 잇따르고 있다. 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은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작부터 창작자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심도 있는 탐구까지 다양한 다큐멘터리 라인업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내달 15일 개봉하는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가자지구에서 포격된 차에 홀로 갇힌 6살 소녀 ‘힌드’의 실제 목소리로 당시의 참상을 전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한 형식으로, 힌드가 구조 요청을 했던 당시의 실제 음성 녹음에 전화기 너머 자원봉사자를 분한 배우의 연기를 덧입혔다. 영화는 지난해 열린 제8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은사자상)을 받았고, 최근 열린 제98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같은 날에는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라스트 댄스’가 담긴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완성하기 위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정을 7년 간의 밀착 취재를 통해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주)엔케이컨텐츠 제공]

일본 다큐멘터리 감독 아라카와 카쿠의 연출작으로, 다큐멘터리는 ‘천재 감독’으로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지막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갈등,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있게 포착한다. 두 시간 분량의 영화로 재편집돼 제77회 칸 클래식 섹션을 통해 세계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세계가 사랑한 뮤지션 고(故)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기록을 담아낸 에세이 ‘류이치 사마코토: 다이어리’도 내달 1일 개봉한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타계 전 3년 6개월여의 내밀한 기록과 삶의 회고를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는 실제 일기와 미공개 음악, 꾸밈없는 영상과 가까운 이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아카이브를 활용해 끝까지 창작을 놓치지 않은 ‘예술가’이자 자신의 완결을 향해 다가가는 한 ‘인간’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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