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 간‘막장 드라마’

아침 드라마의 세계엔 전지전능한 존재가 산다. 30분 분량의 짧은 스토리 안에 “황당할 정도의 상황 전개와 공감이 어려운 캐릭터”(윤석진 드라마평론가)가 활개를 친다. “완성도와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와 구성”(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을 보고있자니, 이 곳에선 세상살이마저 쉬워 보인다. 뒤틀린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배신과 음모, 복수가 난무한다. 이들을 일컬어 ‘막장’이라 불렀다.

최근 안방 시청자 사이에선 새로운 TV드라마 장르가 하나 생겼다. 이른바 ‘밤에 하는 아침드라마’다. MBC는 이 영역에 있어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한다. 지난 19일 기준, ‘여자를 울려’<아래>와 ‘여왕의 꽃’<위>은 각각 21.8%, 16.9%(닐슨코리아 집계)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미 진작에 ‘개그콘서트’(KBS2)가 수년간 지켜온 시청습관까지 깨버렸다. ‘여자를 울려’보다 25분 늦게 시작하는 ‘개그콘서트’는 이날 11.5%를 기록했다.

시청률은 높은데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두 편의 드라마는 일단 기존 막장드라마가 그려왔던 도식적인 설정을 그대로 따른다. 출생의 비밀, 재벌가 음모, 불륜이 요소 요소에 배치됐다. 제작진의 친절함도 여전하다. 철저하게 타깃 시청층을 배려해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성공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스타 셰프(김성령 분), 학교폭력에 두 팔 걷은 형사 출신 밥집 아줌마(김정은 분)다. 그런데 혈연관계가 참 더럽게 꼬였다. 엄마와 딸은 배 다른 형제와 연애하고(여왕의 꽃), 별거 중인 부부는 남매와 연애(여자를 울려)한다.

거창한 주제의식과 작가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으나, 이들은 시청자를 홀리는 법을 안다.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며 극적으로 치달을 때 시청자는 혼이 빠진다.

욕망의 화신(김성령)이든, 마더 테레사에 버금가는 인내심의 달인(김정은)이든 여주인공들은 어찌됐건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음모와 배신, 복수로 점철됐어도 결국엔 ‘화해와 용서’라는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한다. 결국엔 권선징악, 어차피 서울로 향할 테니 그 과정에 어디를 들러도 무방하다. 시청자만 쏙 빼놓은 이 세계의 암묵적인 합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존의 드라마 공식을 극대화해 매회 자극의 요소를 집어넣는 것이 막장드라마의 방식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말이 되지 않지만, 자극은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가장 단순한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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