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은 숨은 음악 장르로 영역 확장
“다양한 장르 관심 환기시켰다” 장점속
“장르의 정체성보다 ‘쇼’ 강조” 우려도
‘슈퍼스타K’(Mnetㆍ2009)가 첫 방송된 이후 TV는 ‘오디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즌2는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18.1%의 다시 없을 시청률이 나왔다. 이후 안방엔 숱한 오디션이 등장했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TV에선 오디션이 성황이다. ‘오디션 하향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다만 흐름이 달라졌다. ‘슈퍼스타K’와 ‘K팝스타’(SBS)가 양대 오디션으로 자리한 가운데 방송사는 오디션의 세분화를 꿰했다. 프로그램의 전략이 ’장르의 다양성’으로 전환됐다.
2011년 ‘톱밴드’(KBS2), 2012년 ‘쇼미더머니’(Mnet), 2014년 ‘트로트엑스’(Mnet), 2015년 ‘후계자’(KBS2), ‘언프리티랩스타’ㆍ‘헤드라이너’(Mnet)가 등장했다. 현재 ‘슈퍼스타K’ 시즌7을 비롯해 밴드 서바이벌 ‘톱밴드’ 시즌3, 여성 래퍼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가 시즌2가 방송 중이다. DJ까지 포용한 ‘헤드라이너’도 있다.
▶ 오디션 프로그램은 왜 특화된 장르를 공략했나=천편일률적인 오디션의 양적 팽창은 결국 자체 경쟁력 저하를 불러왔다. 같은 포맷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서바이벌 오디션은 어느 채널에서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사연팔이’가 비난받았고, ‘공정성’을 의심받았다. MBC ‘위대한 탄생’이 세 번째 시즌을 끝으로 사라진 것도 그 사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디션의 이야기 구조를 시청자가 꿰차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 프로그램의 범람은 식상함을 줬다”며 “시청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제작자의 고민이 나왔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장르를 분산했다”고 봤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싫증난 대중은 변화를 요구했고, 제작진은 새로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다양한 장르가 오디션의 경쟁 체제 안으로 들어왔다. “발라드와 아이돌(댄스)로 양분되는 가요시장”(김작가 대중은악평론가)에서 소외됐던 트로트, 록, 힙합, 일렉트로닉을 방송이 건드렸다. “트렌드에 맞춘 방송의 포맷 변화와 숨은 음악 장르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특화된 장르의 오디션으로 확장”(마두식 CJ E&M PDㆍ‘슈퍼스타K7’)된 상황이다.
3년 만에 시즌3로 돌아온 ‘톱밴드’(KBS2)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윤영진 PD는 “시장에서 소외된 역량있는 밴드음악과 대중의 간극을 좁히고자”고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다른 상업방송에선 품지 않는 비주류이지만 국내 음악시장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뮤지션들”이라는 판단에서다. 시즌3가 방송되기까지 제작비 확보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밴드에게도 필요했던 무대라는 것이 지원자 숫자(622팀)로 증명됐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는 Mnet의 도전이었다. ‘쇼미더머니’를 연출했고, ‘언프리티 랩스타’를 연출 중인 고익조 PD는 “다양하고 실력있는 래퍼들을 알리고자 기획해, 어렵고 낯설게 느낀 힙합음악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고 말했다. ‘쇼미더머니’에서 가능성을 보인 여성 래퍼들의 출연을 계기로, “남성 래퍼들에게 밀려 실력을 충분히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여성 래퍼들이 경쟁을 통해 더 많은 공연을 보여주는” ‘언프리티 랩스타’까지 나오게 됐다.
▶ 장르 오디션은 ‘양날의 검’?=장르 음악을 주인공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종의 ‘결합상품’이다. 철저하게 하나의 장르로서 존재했던 ‘음악’을 ‘예능’과 결합했다. 소위 ‘마이너리티의 영역’으로 자리했던 특정 장르를 품다 보니 제작진은 대중성과 음악성을 양손에 쥐고 고심을 거듭한다. 전문가들은 장르 오디션을 ‘양날의 검’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큰 장점은 “음악의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점이다. 각 프로그램의 탄생 배경과 상통하는 지점이다. “아이돌 위주의 댄스음악이나 발라드가 아닌 다른 선택지도 방송이 보여줘야 한다”(윤영진 KBS PD)는 ‘책무’다.
그간 “특정 장르만을 조명하고 다양한 음악을 보여주는 데에 소홀”(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했던 미디어가 다양성을 꾀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고육지책일지라도 노출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방법이 없는 뮤지션을 대중친화적으로 만든 부분이 있다”고 봤다. 정덕현 평론가도 “대형기획사가 아이돌 위주의 음악을 생산하며 취향의 단순화를 가져온 음악시장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숨통을 틔워준 측면이 있다”며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 새로운 틀이 필요했고 이는 앞으로도 요구된다. 신인들이 개성을 보여줄 무대가 없는 상황에서 방송이 그것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장르로 존재하는 음악을 예능으로 소화하니 부작용도 노출된다. “장르의 정체성보다는 쇼적인 측면만 강조”해, “장르의 본질을 왜곡”(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한다는 비판이다.
업계에선 특히 제작진의 각 장르에 대한 이해 없는 접근과 지나친 ‘엔터테인먼트화’를 우려한다. 자극적인 편집, 출연자 기행 등 극단적인 논란을 양산한 ‘쇼미더머니’와 같은 사례다. 김작가 평론가는 “보여주기에 최적화된 자극적인 내용을 여과없이 내보내 문제가 생긴다. 좋은 취지를 훼손시키지 않게 검증된 자문단 등의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송 콘텐츠로서 장르별 오디션이 확고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오디션답게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다른 이야기의 전달방식도 요구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법칙이다. 하지만 현재의 장르별 오디션은 기존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덕현 평론가는 “기존의 틀을 버리지 못해 새로운 장르의 오디션을 시도해도 성공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다른 사람을 건드리면서 재미를 주려는 편집이나 치열한 서바이벌 형태가 아닌 여러 사람을 주인공으로 부각할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