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칼자루 휘두르는 건 방송사 마음, 욕하는 건 시청자 마음
이혜미=이렇게 편성하나 저렇게 편성하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정진영=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을 남겨두는 게 시청자에 대한 예의 아닐까?
가을야구 시즌이 돌아오면 지상파 방송3사의 편성표는 복잡해진다. 더불어 ‘해묵은 논란’이 반복된다.
방송3사는 이 기간 평균 4시간에 달하는 야구 중계를 위해 기존 정규 프로그램을 줄줄히 결방한다. 당연히 사전 결방을 예고한다. 다만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도 대역전극이 펼쳐지는 야구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해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사달이 난다. 지난 14일 결방한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가 대표적 사례다.
이날 드라마 결방이 뒤늦게 공지되자 온라인은 발칵 뒤집어졌다. 네이버 연예기사 페이지에 올라온 ‘그녀는 예뻤다’ 결방 기사는 톱스타의 열애설이나 사건, 사고 기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만50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의 대다수는 원성이었다. 마지막까지 야구를 붙잡고 있었던 드라마 시청자들의 들끓는 분노가 쏟아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편성 확정을 하지 않았던 방송사를 향한 질타가 나왔다.
드라마 시청자의 원성에선 프로야구 중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야구는 스포츠채널에서 하지 왜 정규 프로그램을 죽이며 지상파에서 방송하냐”는 반응이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 시즌은 총 5개 스포츠 채널(MBC스포츠플러스, KBSN스포츠, SBS스포츠, 스카이스포츠, 스포TV)에서 중계했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 돌입하면 정규 시즌 내내 중계엔 손을 놨던 지상파가 순번을 정해 방송을 내보낸다. 한 스포츠 채널 관계자는 “포스트 시즌의 중계는 지상파 방송사가 독점으로 생중계를 하기 때문에 기존 5개 채널에선 경기가 끝난 이후에 방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 간의 협의 내용이다.
스포츠 채널 입장에선 서운하다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지난 수년동안 야구 중계방송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려놓은 각 스포츠채널의 노고가 사라진다. “한 해 농사는 우리가 했는데 수확은 남에게 맡기는 기분”이라는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의 3사 중계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했다. “보편적 시청권의 확보”와 “중계권을 가진 쪽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이 소수점 자리를 놓고 시청률 경쟁을 벌여도, 지상파 방송사의 야구 중계가 거두는 성과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관계자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은 프로야구의 최대축제인 포스트 시즌은 전 지역을 포용할 수 있는 공중파에서 중계해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 스포츠 채널의 관계자 역시 “지상파 방송사의 접근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보편적 시청권’을 제공한다는 명분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실리다. 지상파 방송3사는 KBO에 거액을 주고 중계권을 구입해 스포츠채널에 재판매를 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는다. 지난해까지 180억원에 달했던 중계권료는 올해 10개 구단으로 늘고, 5개 스포츠채널에서 중계를 하며 360억원으로 뛰었다. 올 시즌 지상파 3사는 각 20억원씩 60억원, 5개 스포츠채널은 60억원씩 300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방송3사가 절정에 치달은 가을야구를 놓칠 수 없는 이유는 ‘포스트 시즌’은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독점 생중계로 인해 광고 총량이 달라지고, 보장된 시청률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무리 광고시장이 위축됐다지만 야구중계가 가져다주는 매출효과가 아직 유효하다. 한 스포츠 채널 관계자는 “야구 시즌이 되면 뜸했던 광고가 알아서 들어온다. 완판 수준에 가깝다”며 “특히 황금시간대는 새로운 광고를 넣을 수가 없을 정도로 꽉 차있다”고 말했다. 포스트 시즌의 경우 ‘몰아주기’가 용인되는 ‘독점 생중계’라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현재의 상황은 달라졌다. MBC는 이번주 방송3사의 순번을 건너뛰기로 했다. 가을야구 대신 드라마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드라마와는 무관하게 여러 사정을 고려했다며 “편성은 당일까지 유동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이미 야구중계는 편성표에서 제외됐다.
광고시장은 위축됐고, 시청률은 드라마의 반토막도 되지 않는 야구 대신 한창 진기록 행진 중인 드라마가 편성을 흔들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15일 정상방송된 ‘그녀는 예뻤다’는 온라인과 SNS 상의 폭주를 시청률로 입증했다. 전국 16.7%, 수도권 17.9%(닐슨코리아 집계)의 시청률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전날 방송된 준플레이오프 두산과 넥센의 중계는 7.4%(전국 기준)였다. ‘그녀는 예뻤다’는 심지어 콘텐츠파워지수(CPI)에서도 1위(260.5)에 올랐다. 이 지수는 광고 몰입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광고주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드라마 시청자의 불만은 잠잠해졌으나, 야구팬의 심기가 유쾌하지 않다. 다시 동점인 된 플레이오프가 지상파 방송사에서 난데없이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천만 야구팬이 황당한 이유다. MBC가 포기한 플레이오프 3차전 중계는 이제 스포츠채널로 넘어갔다. 스포츠채널 역시 순번을 정해 포스트시즌을 중계한다. 당초 SBS스포츠 차례였으나 배구 중계 관계로 KBSN 스포츠가 현장에 직접 나가 영상을 담는다. 다만 독점 방송은 아니다. 시청자들은 전 스포츠채널을 통해 플레이오프 3차전을 즐길 수 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