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폰’은 1년 전 살해당한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은 한 남자가, 과거를 되돌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단 하루의 사투를 그린 추격스릴러. 현재 절찬 상영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더 폰’은 149만 2328명을 동원하며 비수기 극장가에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김봉주 감독에게 첫 영화를 세상에 내놓게 된 기분을 물었다.
“제 첫 영화를 개봉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게 자체가 성적을 떠나 제게 의미가 커요.”
손현주, 배성우와 인터뷰 할 당시 두 배우 모두 김봉주 감독을 현장에서 ‘카리스마 있고 리더쉽있는 감독’이라고 칭찬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쑥쓰러운 듯 멋쩍게 웃어보였다.
“여유있게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어요. 저희 영화가 예산 규모가 큰 게 아니라 빡빡한 일정이었거든요. 주어진 예산 안에 정리를 해야 했어요. 오늘 분량이 문제가 생기면 뒤 분량도 문제가 생기니까 집중을 했죠. 제가 현장에서 진행을 볼 때도 많았어요. 조감독 친구들도 잘해왔는데 감독이 서둘렀을 때와 감독이 서두를 때는 다른점이 있으니까요. 자체적인 진행을 위해서 나설 땐 나섰죠. 그런 모습을 보고 칭찬해주신 것 같아요.”
당초 ‘더 폰’은 캐릭터의 나이도 달랐고 다른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두 남자의 치열한 대열을 그리는 이야기였다고.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40대의 평범한 고동호와 50대 후반의 도재현의 이야기 였어요. 도재현에게는 결혼을 앞둔 딸도 있는 설정이었고요. 고동호는 상황을 계속해서 바꿔야 하는 사람이고 도재현은 유지를 시켜야 하는 남자죠. 이 두 남자의 대결을 그리고 싶었어요. 여기에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넣었고요. 처음에는 누아르 장르로 시작했어요. 투자가 들어오고 15세 영화의 상업 영화로 규제가 되면서 가족적이고 포커스가 고동호에게 많이 맞춰졌죠.”
‘더 폰’ 결말을 두고 관객들은 여러가지 추측들을 내놓고 있다. 명확한 결말을 내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의 상상력의 여지를 주기 위해 일부러 설정한 감독의 의도다.
“의도한 결말이었어요. 논리적으로라면 몇명의 동호가 나오고 눈을 뜬 동호는 새로운 차원의 동호인지, 지금 세계의 동호인지 따져야 하지만, 그것까지 파고들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엔딩에서 경림이가 강아지를 안고 내려오잖아요. 저 나름대로 꿈이 아니라고 의미하는 장치들을 심었어요. 날짜나 시간은 너무 명확해질까봐 뺐고요. 다양한 감정들이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감정을 너무 표출하지 말고 절제 해달라고 주문을 했죠.”
이 작품은 타임슬립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로 한 번 몰입하면 정신없이 스토리에 빠져들게 되는 힘을 가진 영화다. 여기에 배우들의 명연기까지,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톡톡히 던져준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김봉주 감독은 설정 자체를 못받아들이는 관객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보통 영화를 볼 때 주인공 한 명만 따라가는데 주인공이 한명 아닐 수 있다는 전체를 깔면 이야기가 되요. 드라마 ‘나인’이나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들도 공중파에 나왔고 귀욤뮈소 작가도 이런 소재로 작품을 계속 쓰더라고요.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타임슬립같은 이런 설정들은 계속해서 할리우드에서 B급 스릴러로 계속 나오고 있고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도망자 플롯은 일반적인 설정이니까요. 이걸 합쳤기 때문에 특이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르적인 쾌감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렵게 보시는 분들도 있고 설정을 못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으시더라고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실 수도 있어요. 논리적으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긴 힘들다고 판단했어요. 그러려면 철학 수준까지 올라가야 되더라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논리가 정확하다고 말도 못하고요. 영화적인 포인트와 장치를 통해서 관객을 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봉주 감독에게 우리나라 충무로, 브라운관에서 가장 신뢰를 주는 배우 손현주, 대세로 떠오르며 ‘충무로의 요정’이라고 불리는 배성우, 굵직한 작품에서 활약해온 엄지원이란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들도 안물어볼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판타지인데, 이 설정을 못받아들여도 배우 때문에 들어가는 경우가 꽤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아무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힘은 아니죠. 손현주 선배님은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계세요. 다른 작품에서도 그걸 보여주셨고요. 나이도 있으신데 몸도 아끼지 않고 열정적으로 임해줘서 제가 정말 감사했어요.”
“캐스팅 할 때 만해도 배성우 형님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상태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 때부터 무서웠어요. 하하. 웃긴 역할을 하지만 눈빛이 무섭더라고요. 전 지금도 무서워요.하하. 성우 형과 작업하기로 해서 촬영하기 한달 전부터 만나서 재현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마쳤어요. 첫날 형이 만들어온 도재현을 보여주는데 제가 생각했던 재현 그 자체였어요. 디테일하고 머리가 진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연수 캐릭터가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어요. 제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여자 형제도 없고 여자를 잘 몰라요. 그래서 엄지원 선배님께 전 데이터가 없으니 배우분에게 많이 의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뒤에 연수 캐릭터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많이 가져오셨어요. 연수 캐릭터가 단순히 그냥 소품처럼 소비되지 않았던 건 8할이 엄지원 선배의 아이디어 덕분입니다. 대사 하나하나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우더라고요.”
이제 막 개봉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시점으로 아직 이를 수 있지만 차기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더 폰’이라는 첫 작품으로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그였기에 앞으로 보여줄 작품에 벌써부터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전 선 굵은 이야기를 좋아해요. 아직 ‘더 폰’ 개봉 때문에 차기작을 생각하기 이르지만,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이디어 생각중입니다. 미스테리 스릴러를 추구하는건 아니고요. 시대를 관통하면서 개인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조금 더 경험이 쌓이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관찰력이 생기고, 시대를 보는 눈이 더 넓어졌을 때 유려하게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자신이 없네요.”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