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나를 잊지 말아요’ 정우성,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라 끌렸어요”

배우 정우성이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감독 이윤정)’로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지난 2014년 ‘신의 한수’와 ‘마담 뺑덕’으로 다소 거친 이미지를 선보였던 그가 다시 순정적인 멜로로 관객들에게 다가온 건 어떤 이유일까. 많은 관객들이 그에게 멜로 이미지를 기대한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5일 한 삼청동의 카페에서 정우성을 만나 그 점에 대해 질문했다.

“저는 ‘정우성표 멜로’, ‘멜로깡패’라는 말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인터뷰나 홍보하는 과정에서 알았죠. 저는 이것도 제가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연기력으로 활약한 그는 정작 자신이 관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도 모른 채 연기에 열중했다. ‘연예인’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배우로서는 그 덕분에 다양한 모습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으니 다행인 셈이다.

“다른 분들이 ‘이번 영화는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꺼낸 것 아닌가’라고 물었는데, 저는 그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배우로서는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 앞으로는 대중을 위해 원하는 이미지를 끄집어 낼 줄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그런 말을 꺼내면서도 ‘나를 잊지 말아요’에 대해서는 특별한 애정을 덧붙였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그런 목적성은 없었어요. 단편을 처음 봤을 때, 그 단편 자체에 끌렸어요. 분위기가 독특했거든요. 그래서 이감독에게 물었더니 이미 장편 시나리오가 있다더라구요. 현실적인 사랑 얘기를 담고 있어서 더욱 끌렸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단편 시스템에서 억지로 장편화하는 것이 아니라 장편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장편화를 도와주기로 했죠.”

원작 단편에서 남자의 이름 ‘W’는 사실 정우성을 염두하고 쓴 감독의 의도였다. 그런 요소가 ‘나를 잊지 말아요’에 대한 정우성의 애착을 더욱 크게 했는지 물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가끔 감독님이 현장에서 컷을 안 외치고 ‘꺄악’하고 소리지르기는 했어도, 저 자신은 신인감독으로 대했어요. 그래서 감독이 현장에서 더 힘들었을 텐데 견뎌줘서 고마웠죠.”

현장에서만큼 철저한 그였기에 이번 ‘나를 잊지 말아요’의 제작을 맡은 것도 단순히 한 작품이 아니라 영화계 전체의 그림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제작을 함께 하니 배우가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 느낌이 강했죠. 배우는 감정의 이해와 표출, 캐릭터를 어떤 인격으로 만드는지를 다루고 감독은 전체적인 세계관에 배우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 관객과 소통하게 합니다. 사실 감독과 배우는 감성적인 면에선 동일해요. 하지만 제작자는 이성적으로 제어해야 해요.”

그래도 그는 제작자 겸 배우로서 항시 현장에서 대기하며 후배들을 돌보는 역을 자처했다. 정우성은 꼼꼼하게 스태프들의 입맛까지 챙겨가며 밥차를 교체하는 등 현장의 후배들을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사실 제작자가 현장에 항상 상주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저는 배우로서 항상 상주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바로 고칠 수 있어 좋았어요. 제 생각에는 제작자도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떨까 느꼈죠.”

인터뷰 중 필자는 현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정우성이 누구보다 속 깊은 배우였다는 걸 새삼 느꼈다. 화려한 외모와 ‘청춘스타’라는 타이틀로 언제나 빛나보였던 이 스타는, 내심 한국 영화계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요. ‘나를 잊지 말아요’처럼 중저예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후배들이 실수가 용납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경험 있는 선배가 그런 후배를 같이하면서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교류와 소통이 필요했어요. 그것이 단절되면 그게 어떻게 한 영화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기반이 탄탄해져야 한국 영화계가 성장하는 거죠.”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고민하기에 정우성은 ‘사람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만난 그는 내심 배우라는 직업이 세상과 고립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요즘엔 세상에 후각적인 추억이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어릴 적 버스정류장에 서있을 때 바람의 느낌, 냄새 같은 것이 정말 좋았는데 요즘은 그런 느낌이 없죠. 어쩌면 제가 일상과는 거리가 먼 배우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죠. 연예계에 대해선 성장했어도 일상과 마주했을 때는 더 신기하게 느껴지고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는 친화력이 상당했다. 예전부터 혼자서 많은 걸 느끼려고 고민하고 민감하게 세상을 받아들였다는 정우성은 눈빛만큼이나 깊은 생각을 하나씩 대중들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잊고 싶은 기억이 있나’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저는 없어요. 불우하다고 무조건 불행한 건 아니잖아요. 사람에 관한 추억, 돈이 없을 때 고민들,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게 나란 사람의 완성이니까요. 그래도 모든 기억이 진실이라는 생각은 아니고, 변형된 기억까지 곧 나라는 이야기죠.”

그렇게 긍정적인 그도 사람이라 때로는 외로울 때가 있단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술 먹죠”라고 단호하게 대답해 현장에 웃음을 자아내는 여유도 보였다.

“술 아니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요. 영화를 볼 때만큼은 저도 관객이니까. 물론 제 영화를 빼면요. 작품이 재밌기만 하면 한없이 푹 빠져서 보곤 해요.”

영화계의 선배이자 영화의 팬인 정우성이 이제 개봉을 앞둔 ‘나를 잊지 말아요’를 본 소감은 어땠을까.

“제작으로도 참여했기 때문에 제작자로서의 아쉬움도 보였죠. 시나리오의 방향성이나 원초적인 생각들로 다시 돌아간다. 다른 영화들은 배우로서의 아쉬움이고. 물론 후회 같은 건 아니에요. 영화는 이미 완성됐으니까요.”

‘나를 잊지 말아요’가 ‘사랑의 희노애락’을 담았기 때문에 단번에 끌렸다는 정우성. 그런 그가 그럼 사랑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사랑이란 찬란한 판타지를 하고 있으면서도 잘 몰라요. 남의 연애담에는 감탄하지만 사실 저의 연애담도 남에겐 감탄을 자아내죠. 많은 분들이 우리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판타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슈팀 이슈팀기자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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