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정도전’에서는 이인임을 연기하는 박영규이고, MBC ‘기황후’에서는 대승상 연철을 연기하는 전국환이다. 두 사람을 악역이라고 표현했지만, 더 정확하게는 끝없이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욕망덩어리라할 수 있다. 요즘 악역은 공감이 가야 하는데, 그 점에서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두 캐릭터는 충분히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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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 이인임役의 박영규 |
이인임과 연철은 둘 다 적대자이면서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 사극은 초반에는 주인공보다는 악역이 카운트파트로 뭔가를 해줘야 주인공이 할 일이 생긴다. 악역이 색깔을 잘 만들어 놓으면 주인공이 힘을 받게 된다. 박영규와 전국환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캐릭터를 보여주며 주인공의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주었다.
박영규의 연기는 놀랍다. 더 이상 시트콤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중년아저씨가 아니다. 정치 9단의 노회한 정치인의 전형이다. 수구보수세력이지만 판세를 읽는 능력만은 탁월하다. 이인임이 황산대첩에서 군량미 공급을 끊어버린 자신에게 분노를 표시하는 이성계(유동근 분)에게 “그래서 정치를 하실 수 있겠소. 전쟁에서 적을 만나면 칼을 뽑아야 하지만 조정에서 적을 만나면 웃으세요”라고 말했다.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에게 곡식을 내주자는 이성계의 제안에 이인임은 “나라 차원의 공짜 쌀은 더 이상 안 된다. 공짜도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 그러면 고려는 망한다”고 맞섰다. 박영규는 귀양 갔다 와 아이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는 정도전을 회유하기 위해 측근을 시켜 정도전의 학당을 부수는 등의 방법으로 속내를 캐내기도 했다. 부패하며 악랄한 기득권 세력의 정점에 서있는 박영규가 머리를 굴리고, 나쁜 짓을 하면 할수록 ‘정도전’은 흥미진진하게 돌아간다. 오랜 유배, 유랑 생활을 했던 정도전의 승부의지를 불태운다. 정도전이 이성계의 군대를 만나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시켜 나갈 앞으로의 과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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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황후 연철役의 전국환. |
‘기황후’에서 원나라 최대 권신인 대승상 연철의 카리스마도 장난이 아니다. 젊은 배우들이 무서움을 느껴 접근을 잘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명종을 암살하고 명종의 장남인 타환(지창욱)을 황제로 앉혀놨지만 모든 실권은 자신이 행사한다. 정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한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대사는 “그 입 닥치시오”다.
‘기황후’에서 모든 장난질은 연철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황후’ 1~2회에서 타환을 죽이기 위해 고려로 유배 보내놓고 책임은 고려에 떠넘기려 했던 장본인이 연철이다. 명종 황제가 남겼다는 혈서를 찾고 있는 세력을 잡으려 하고, 적군과 아군을 가리기 위해 독주를 마시고 죽은 체하는가 하면, 지방의 각 성(省)에서 후궁 후보자를 보내 후궁 오디션을 실시해 호족세력을 관리하는 모든 계략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환(지창욱)과 승냥(하지원), 그리고 고려왕 왕유(주진모)가 어떻게 이 살벌한 연철을 따돌리고 목적을 달성할지 지켜보게 된다.
